―그 시절 맞서 싸웠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당시 체제와 반체제의 관계는 즉물적(卽物的)이었지요. 미우면 미운 겁니다. 지금은 그 감정이 다 없어졌죠. 그건 '해답'으로 끝났으니까."
―무슨 '해답'을 말하는 겁니까?
"죽었으니까요. 죽은 뒤의 평가는 그와 싸울 때와는 당연히 다르지요. 박정희가 집권해서 그전까지의 보릿고개, 황달에 걸린 것 같은 노란 얼굴색이 없어졌죠. 그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소위 산업화 시대라는 것이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고… 오늘날을 만든 것이죠. 근대화의 결실을 맺었지요. 그 당시 우리가 싸웠던 유신체제의 저항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죠."
―어찌 변절한 느낌이 좀 듭니다.
"아니요. 박정희라는 인간을 크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 거죠. 세월이 흐르면 지지도 변하는 겁니다. 변(變)은 참 좋은 겁니다.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진리입니다. 내가 있던 환경도 바뀌었지 않습니까. 나는 10년 전의 내가 아니지요. 우리 다 그렇지요. 1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닙니다. 그때 어디에 있을지 모르나."
위 내용은 시인 고은을 한 기자가 대담한 내용이다.
고은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여정에서 강력한 반체제 시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시인이다.
지금도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장’으로 활동한다.
70을 훌쩍 넘어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한 경지를 넘나드는 그의 기사를 눈여겨보았다.
그런 그의 말 가운데 눈에 띄인 것은 ‘나는 10년 전의 내가 아니지요. 우리 다 그렇지요. 1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닙니다’. 의 부분.
인생의 소중한 각성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다 흘러간다.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다.
아니 우리는 다 변화를 향하여 나아간다. 무 생명체만 제 모습을 지킨다.
한 사람의 사고가 세월과 함께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현상을 성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이나 예술을 한 이들을 후대에서 연구할 때, 보통 그의 작품 세계를 초기 중기 말기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변화는 중요하다.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변화는 변질과는 다르다.
아마도 현재의 수준에서 더 후퇴하는 변화를 변질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더 자기 중심적이 되고 더 이익적이 되며 더 현세주의 적으로 돌아설 때 이를 변질 혹은 부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사람의 변화를 타인이 변질이라고 매도할 때부터이다.
특히 나와 관점이 달라질 때 사람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변질이라고 비난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많이 빠지는 함정은 사상, 정치적 관점, 이념의 경우이다. 이것들 역시 변화가 당연하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멀리 보이는 이치이다.
나도 1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기를 소원한다.
영원이라는 관점으로 오늘을 보는 자리에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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