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12. 9. 30. 13:25

 

벗 최종설

 

그게 아마 그의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여름 방학 이후 귀에 들어간 물에 대한 치료가 빗나갔다.

결국 그는 청력을 잃었다.

그는 홀로(?) 컸다.

다들 학교라고 책보를 들고 다니는 긴 날을 그는 혼자 지냈다.

 

그의 집이 그리 먼 것은 아니었지만

잦은 친구 교제는 잊혀진 채로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컸다.

청년기가 다되어 들어가 본 그의 방은

사면이 서고였다.

내 기억속의 그는 백과사전을 독파하는 책벌레다.

 

고인이 된 관촌수필의 이문구 수하에서 습작도 했다.

그렇게 오가다가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그후

그는 하천 골재를 채취하는 제법 분주한 회사를 차렸다.

돈벌이가 제법 잘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는 밤이 야심하도록 필담을 주고받았다.

종교와 신에 관해서는 그도 해박했다.

신학생이던 나에 못지않게 구약을 알고 있었다.

그는 보편적 종교 찬성론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하나님, 예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내가 해외에 가 있는 동안

그의 삶에 격변이 일었다.

 

사업의 부도...

덩달아 밀어닥친 가정의 소용돌이...

구치소 생활은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많이도 낡은 잉글랜드 세미디태치 내 집의 쪽방

거기 놓인 팩스에 장문의 글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달필의 이 친구의 글...

아! 삶의 밑바닥에서 회심의 문고리를 잡은 그의 장문의 가슴 아린 고백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라는...

하나님 앞의 인생의 낙엽같음...

 

얼마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기도원에 묻혀 지내던 그는 나의 동리에 자리했다.

그리고는 내가 섬기는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 그는 나의 교인이 된 것이다!

 

귀가 안 들리는 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그

그의 나날은 자신만의 내면의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는 시간들이다.

 

그러다가 보게 된 한국 교회의 이즈러진 현실들은 그의 고뇌가 되었다.

차마 내 얼굴을 봐서(?) 유형교회를 부인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 부조리와 형식뿐인 신앙으로 가득한 이 시대의 교회를 떠나가고 있었다.

 

대신 그는 우리가 주도하는 *국 선교에 마음을 쏟고 출강을했다.

최종설 집사... 그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사 중 하나다.

언어와 상관없이 마음과 마음이 영혼과 영혼이 통하는 현장이기에....

 

이제는 그의 가족 형제들도 어언 듯 기독교 신앙인으로 돌아오는 즈음이다.

오늘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간 그

그는 이제 나의 멘토요 무서운 설교 비평가이다.

 

마침 주보의 펜 릴레이 난에는 그의 순번인지 그의 글이 실려있다.

어제 설교 준비를 마치며 보게된 주보의 글...

'이것이 설교의 결론이야' 라는 마음을 주님이 주셨다.

 

오늘 주일 아침... 나는 설교의 결론을 그의 글로 대신했다.

여기 한 사람의 영혼의 신앙 고백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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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부쩍 늘었다.

내 나이 50을 훌쩍 넘고 보니 집안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

늦가을 서리 맞은 나뭇잎 같은 분들이 부쩍 늘어난 탓이다.

 

 

임종직후의 망자(亡者)의 얼굴이나,

염하기 위해 좌대에 뉘여 놓은 시신을 가까이 보게 되는 경우도 덩달아 늘었다.

관위에 흙이 덮이고, 봉분(峰墳)이 만들어져 가는 모습,

화장장 소각로에 관이 디밀어지는 광경 또한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은 인생은 결국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사실이다.

과거의 그 어떤 사람도 이 사실에서 예외가 아니었고,

조만간 그 뒤를 잇게 될 우리도 마찬가지다.

올 때 빈손으로 오고,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귀다툼 속에서 물질적 부()와 세상의 권력을 소유하게 됐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름진 음식, 명품 옷, 호화주택, 고급 차, 이런 것들이 사람이 인생의 목표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죽은 자에게는 천문학적 금액이 입금되어 있는 예금통장도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땅 문서도, 박사학위 증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생시(生時)였을 때는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함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을 것이다.

이 중요하고 귀중한 목표와 가치들이 그가 숨쉬기를 멈춘 순간부터 쓸모없는 돌멩이와 다름없어지는

이 무서운 역설(逆說)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을이다. 한 여름, 그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도 먼 길을 떠날 때가 가깝다.

이 가을에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빚으신 그 "사람답게".

 

 

                                                                     종설과 함께 자란 주포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