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학위와 표절
목사와 학위와 표절
어학 사전을 펴보다.
표절 [剽竊] 뜻 1)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 2) 자기 것인 양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서 쓰다
얼마 전 밖에서 논문 표절이라는 말이 설왕설래할 때 교회 안에서는 ‘설교 표절’이란 말이 무성했었다. 그러던 것이 작금에는 많이 잦아들었다.
사실 표절이라는 말을 냉혹한 잣대로 사용할 때, 그 참상에서 무사 할 사람이 있을까.
해 아래에 본래 새 것이란 없다.
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새로운 곡을 썼다 할지라도 그 속내에는 언젠가 내가 자랄 때 부터 입력된 누구누군가의 곡들의 잔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위대한 미술가가 그린 추상화라 할지라도 그가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부터 배워온 그 그림의 변형이 아닐까.
특히 설교자에게는 이것이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의 설교를 듣거나 누군가의 책을 읽었을 때, 그 깊은 감동이 내 속에 녹아들고 그것이 내 사상이 되고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깨달음이 내게서 나와 조합이 되고 그래서 연단에 섰을 때... 나는 표절에서 자유로운가.
그 성격상 일일이 누구의 책이요 누구의 설교였다고 밝힐 수 없는 강단에서 설교자에게는 그저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자 하는 그 일념 하나만이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누군가의 설교를 제목부터 전개까지... 심지어는 문장의 예화까지 그대로 옮겨온다면 그것은 남의 설교의 무단 재현이겠다. 이것은 목회자의 양심으로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그런데 귀농하여 작은 농촌 교회에 나가는 이의 말은 또 다른 고민을 준다.
“연로한 전도사님이 횡설수설하는 주일 설교보다는, 아예 믿을 만한 성경 주석을 펴놓고 주욱 읽어 내려가는 수요 저녁이 훨씬 은혜롭다네”
요즘 한 목회자의 박사학위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대필의혹이니 아니니 하는 말까지 가세하고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너무 안타깝다.
이 일은 사실 우리들 전부를 돌아보게 한다.
우선 현직 목회자들이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한다는 명분은 누구도 타박할 수 없겠다.
그러나 그것이 굳이 학위 과정일 때는 단순하지 않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일상은 분주함 그 자체이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움직임은 밤 으슥해서야 끝난다.
교회의 규모가 커갈수록 이 현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오라는 곳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다. 자신의 목회 현장도 버거운데 말이다.
이것은 대개 목회자 자신이 초래하는 현상이다. 단순한 삶, 묵상이 있는 삶은 애초에 불가능해진다.
그래서인지 시중 서점에서 보라. 스님들의 글은 제법 눈에 띄여도 목사의 글이 일반 서점가에 깔리는 일은 거의 전무하다. 목회자들은 생각할 틈 조차 없다!
자 그런 상황에서 공부들을 시작하고 코스웍을 마친다. 초인적이다.
이제 논문까지 시작한다. 이게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해외에서 한인교회를 목회하며 학교 인근에서 수년을 사역했었다.
가만히 보니 모든 매사를 중단하고 오직 공부만하는 사람은 그런대로 학위과정을 마치고 돌아가고, 처음부터 연애하고 골프하고 그러던 녀석들은 대부분 중도 탈락이다.
신학교도 유학 와서 공부에만 전념하는 이들은 그래도 끝을 보지만, 처음부터 교회 사역에 손을 대고 공부를 병행하려 한 이들은 공부를 포기하거나 무한 세월이다.
그럼에도 우리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공부에 무한 유혹을 느낀다. 쉽게 말하면 학위에 미련이 있다.
이는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 풍토가 빚어낸 문제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박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목사 청빙을 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고, '박사 정도는 돼야'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세대로 진입하고 있다.
감히 단언하건대,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목회가 소홀하던지 공부가 소홀하던지 둘 중 하나이다. 목회가 가짜이든지 공부가 가짜이든지 둘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공부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정황으로 얘기 할 때, 오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논문은 일반 사회의 학문적 잣대로 검증한다면 백전백패가 아닐까. 우리 목회자들의 학위는 진정 당당한 것일까.
굳이 학력의 진정성을 논해야 한다면, 얘기는 그 보다 훨씬 기본에서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
그는 정상적인 고등학교를 나왔는가.
그는 진정 정상적인 대학을 나왔는가(무인가 신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의 별과 등 숨겨진 구멍은 너무 많다. 소위 유명 목사들의 경력이 신대원에서부터 쓰여지는 연고를 아는가).
그는 진정 신학대학원을 나왔는가(교육부 인정의 대학원생만 신학대학원을 나온 것이다. 그것이 아닌 별과정의 졸업생이 절대다수인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런데 위의 내용들의 검증은 대개 간과된다.
그럼에도 드디어 그의 마지막 학위란에는 '박사'가 쓰여 진다!
이것이 무엇을 위해 종을 울리는 형국인가.
학위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더구나 학위가 목회자의 신앙적 인격적 자질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천만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는 지금 박사 학위자 목사를 찾다가 제 발등을 찍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 작금에 빚어지고 있는 표절 시비 건이 대승적인 면에서 잘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첨언/ 이 글의 일반론을 뛰어넘는 학적 능력 소지자들, 그리고 정말 신실하게 목회하는 학위 목회자들에게는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