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보낸 사람
극장 내 불이 꺼지고
아직도 관객은 자리를 잡느라 부스럭 거리는 시간...
이미 화면에서는 두 눈으로 보기 힘든
폐쇄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고문이 전개된다.
여자의 피가 튀고 다리를 부러 뜨리고...
남편은 그것을 바라보고 울부짖고...
그럼에도
아무 느낌 조차도 없이 불 달군 인두를 여자의 다리 사이로 디미는 자.
그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이 힘든
장면이다.
뒤이어 펼쳐지는 낯 선 마을 풍경,
아니 어린 시절 나의 동리 같은 낯익음이 어른거리는 마을...
중국과 강 건너를 마주하는 북한의 한 마을이다.
그렇게 아내를 보낸 뒤
중국에 들어가서 돈을 한 뭉텅이 들고 온 주인공.
그는 ‘지하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마을 이웃들을 다 데리고 강을 건너려고 한다.
이래서 ‘신이 보낸 사람’인지.
지하 교회 얘기가 그리 낯설지 않은 나 이지만,
극중의 장면은 너무도 처절하게 다가온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기 한 사람씩 설명이 필요할 만큼 사는 방식, 사고방식, 감정의 표현이 다르다.
그래서 현실이다.
결국 자꾸 꼬여가는 상황은 -
모두를 ‘가나안’으로 이끌려는 주인공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오고
그 와중에 하나씩 죽음을 맞이한다.
가난이 저주처럼 자리하던 60년대의 우리네 옛 동리같은
그보다 더 차갑고 음울한 골목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숨이 막힐 지경의 플롯에는
단 한조각의 웃음도 찾아볼 수 없다.
비록 포장된 종교행사이지만
잠시 동안 보여주는 평양 칠골 교회의 예배는
또 다른 별세계로 다가온다.
결국
풀릴 것 같던 자유를 향한 음모는
주인공 마저 죽음으로 그렇게 정리가 된다.
그리고 그 마을은 다시금- 처연한 일상으로 되 돌아간다.
자유를 향해 가보자고 결의했던 이들 중
단 한명도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
이 절망감을 어떻게 할까.
지극히 종교적인 영화 같은 배경을 깔고 있지만
결코 그렇게만 느낄 수 없는 이야기...
저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그토록 신음으로 부르는 신은 아예 부재 중 같은 이야기.
입에 올리기조차 사치스러운 ‘인권’..
그것에 대한 발길질이 일상인 그 땅.
그러나 그 쓰라린 현실에서
누구는 신의 존재를 보고 누구는 인간의 절망을 볼 것 같다.
생명에의 애착은 인간의 기본인데도
생과 사의 접경을 매일 넘나드는 저들, 우리의 형제들.
2시간의 방영이 끝나고... 관객은 미동도 안한다.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호흡하는 것 조차 저들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