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14. 2. 19. 14:48

극장 내 불이 꺼지고

 아직도 관객은 자리를 잡느라 부스럭 거리는 시간...

 

이미 화면에서는 두 눈으로 보기 힘든

폐쇄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고문이 전개된다.

 

여자의 피가 튀고 다리를 부러 뜨리고...

남편은 그것을 바라보고 울부짖고...

그럼에도

아무 느낌 조차도 없이 불 달군 인두를 여자의 다리 사이로 디미는 자.

그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이 힘든

장면이다.

 

뒤이어 펼쳐지는 낯 선 마을 풍경,

아니 어린 시절 나의 동리 같은 낯익음이 어른거리는 마을...

중국과 강 건너를 마주하는 북한의 한 마을이다.

 

그렇게 아내를 보낸 뒤

중국에 들어가서 돈을 한 뭉텅이 들고 온 주인공.

그는 지하교회교인들로 구성된 마을 이웃들을 다 데리고 강을 건너려고 한다.

이래서 신이 보낸 사람인지.

 

지하 교회 얘기가 그리 낯설지 않은 나 이지만,

극중의 장면은 너무도 처절하게 다가온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기 한 사람씩 설명이 필요할 만큼 사는 방식, 사고방식, 감정의 표현이 다르다.

그래서 현실이다.

 

 

 

 결국 자꾸 꼬여가는 상황은 -

모두를 가나안으로 이끌려는 주인공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오고

그 와중에 하나씩 죽음을 맞이한다.

 

가난이 저주처럼 자리하던 60년대의 우리네 옛 동리같은

그보다 더 차갑고 음울한 골목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숨이 막힐 지경의 플롯에는

단 한조각의 웃음도 찾아볼 수 없다.

 

비록 포장된 종교행사이지만

잠시 동안 보여주는 평양 칠골 교회의 예배는

또 다른 별세계로 다가온다.

 

결국

풀릴 것 같던 자유를 향한 음모는

주인공 마저 죽음으로 그렇게 정리가 된다.

그리고 그 마을은 다시금- 처연한 일상으로 되 돌아간다.

 

자유를 향해 가보자고 결의했던 이들 중

단 한명도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

이 절망감을 어떻게 할까.

지극히 종교적인 영화 같은 배경을 깔고 있지만

결코 그렇게만 느낄 수 없는 이야기...

저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그토록 신음으로 부르는 신은 아예 부재 중 같은 이야기.

입에 올리기조차 사치스러운 인권’..

그것에 대한 발길질이 일상인 그 땅.

 

그러나 그 쓰라린 현실에서

누구는 신의 존재를 보고 누구는 인간의 절망을 볼 것 같다.

생명에의 애착은 인간의 기본인데도

생과 사의 접경을 매일 넘나드는 저들, 우리의 형제들.

 

2시간의 방영이 끝나고... 관객은 미동도 안한다.

유로운 공기 속에서 호흡하는 것 조차 저들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