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14. 6. 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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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안심할 수 없다

 

칼빈에 관한 논문으로 늦깎이 학위를 받은 친구와 점심을 하다.

그는 대화 중에도 우리 시대가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의 신앙과 신학은 무엇인가?

절대주권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견인을 빼놓을 수 없다.

 

챙겨 온 그의 교회의 주보를 우연히 살펴보다.

뒷면에 지난 주일의 설교 요약이 제법 촘촘히 박혀 있다.

그 내용은?

 

벧전 5:6-11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영적 생활에 적이 있기 때문. 사단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

  우리 믿음을 포기시키는 것이 마귀의 전략이기 때문...

  우리의 영적인 목표와 방향을 흐리게 하기 때문...

 

그렇다면 - 우리의 신앙은 자칫 방심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 아닌가?

견인 만이 전제된다면 이 설교가 성립될 수 없다.

한번 구원 받았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우려를 깔고 있지 않은가?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립도 되지 않을 설교를 우리 칼빈주의자들은 계속하는 것이다.

구원의 견고, 예정의 확고함과는 상관없는 경고성 설교를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 그것이 성경이니까.

 

어쨌든 믿는바와 전하는 바가 차이가 나는 그런 모순 속에서도

오늘도 담대히(?) 신앙을 채근하는 우리들의 열정은 가히 높이 사야겠다.

 

구원은 아무에게나 보장되어 있지 않다.

구원의 확신은 좋은 것이나 아무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구원은 누구나 안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