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부럽다
그가 부럽다
9월의 마지막 날, 뜻밖의 전화를 받다.
‘목사님 저 M입니다’
전화 저 너머로 부터 생기가 전해온다.
‘어? M목사님. 정말 궁금했네... 소식이 그냥 끊겨서..’
‘저 잘 지냅니다. 한번 뵈러가려하는데요. 집사람도 함께 갑니다’
미룰 것이 있는가.
바로 다음 날로 약속을 잡다.
약속대로 두 사람이 조용한 교회문으로 들어서다.
표정들이 밝다.
악수하는 손길의 힘이 느껴진다.
우리 아내도 와서 합석하다.
피차 적조했던 날들의 자세하고 상세한 얘기는 건너뛰다.
지난 세월 속에서 우리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했던 이.
그 후 서울 인근 도시에서 개척을 했었다.
그 뒤로 내가 두 번을 방문 했었던가?
그러는 동안 그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부분의 개척교회들이 겪는 청룡열차 같은 날들을 그도 맞았다.
둥글둥글하다기 보다는 예리한 기질의 그...
성경의 교회와 현실 교회와의 괴리에 심히 가슴앓이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더구나 그러는 와중 남매 중 지병이 있던 아이를 떠나보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연락이 끊겼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시간들을 뛰어넘어 식사를 했다.
그는 말했다.
‘저도 부교역자 시절을 보내며 여러 목사님들을 모셔봤습니다. 이목사님 만큼 좋은 분은 없었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듯 싶다. 고맙다.
그러나‘좋은 목사’가 답은 아님을 이제 알아간다.
더구나 그것은 지극히 상대적 평가이지 무슨 절대 가치로 논해진 것도 아니기에.
무엇보다 내가 동역하던 부목사...
나의 목회를 보고 배운(?) 그가
김천의 한 오지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면...
선배 목사로서 내게 무슨 자랑스럼이 있을까.
그러나 그들 부부는 대화 내내 행복해했다.
아들 내미는 홈스쿨을 한다고 했다.
죄로 오염된 사회는 아이에게 아니라고 했다.
텃 밭에서 따왔다는 가지가 팔뚝만하다.
호박도 제법 탐스럽다.
우리는
기약 없는(?) 작별을 했다.
겨우 전기가 들어오고... 휴대폰은 터지지 않는 골짜기라고 했다.
지역 주민들과도 외진 산골인가 싶다.
주소도 없는 집에 산다고 했다.
왼 종일 성경만 읽어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했다.
부러워졌다...
그가.
그림 이흥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