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이중성
신앙의 이중성
우리 대부분은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 고백으로 삼는다.
그래서 공예배시에는 보통 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알고 믿는다니...이는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정말 그 ‘전능하신 분’을 믿는 것일까?
신학교 교수들 중에도 그것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이들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한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그들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그 분을 믿는 것일까?
사실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을 가르치나?
위대한 고전문학이라서?
예수는 그저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해방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죽은 위인 일 뿐이다.
그의 탄생과 부활은 다 가설이다.
이게 그들의 믿음이다. 그런데도 왜 신학교에 있나?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일까.
산학교 교수들만 그런 게 아니다.
목사들 중에도 제법 많다.
그들이 가르치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민중 해방자요 위대한 영웅일 뿐이다.
그의 이름으로 사회 투쟁을 하고 설교단을 정치 담론 장으로 삼는다.
목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오늘 많은 교인들도 하나님을 실제로 믿지 않는다.
내 삶속에서 전능하심으로 전재하는 분
나의 모든 것을 익히 아시는 전지하신 분
그런 하나님은 사실 부재한다.
그렇게 그들은 예배를 하고 모임을 하고 종교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은 자신이 들고 다니는 성경을 향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그래도 현실은 다르다...’ 라고 말한다.
내 방식 내 고집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실천론적 무신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