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15. 1. 30. 10:28

저마다의 고난

 

누구나 자신의 삶의 무게가 가장 크다.

어린아기에게는 잠시 엄마가 마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때로 자신이 삶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토로하는 이들을 만난다.

자신이 당하는 가난은 가장 비참하다고 말하는 이도 보았다.

물론 그들의 현실, 그의 참혹한 아픔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거의 10여년을 끌어오는 목회적 고난을 허덕이며 그런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그 무게가 나를 질식 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건강 검진 결과 이상 소견이 전해왔다.

재차 진단 후 내린 결론은 위선종이라는 증상.

위암은 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방치하면 안된다. 제거해야 한다는 것.

 

사흘간 입원해 있는 시간에 생각케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이 더 있구나!

 

아직은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 쳐지게 다가왔다.

모든 상황을 중단 한 채 누워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같은 병실의 중한 환우들에게서 새삼 보아야했다.

그래서 감사하다기 보다는, 아직은(!) 건강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이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다.

 

오늘 아침, 우리 고교 신우회 밴드에 올라온 동문의 글 중 한 조각을 옮겨본다.

 

   ‘지금 현재 모 병원 원목으로 있습니다.

원래는 **에서 교회 담임목회를 했었는데, 그만 1년전 발병한 대장암말기 판정이 저의 목회인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길이 이리도 험난해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도 들었습니다.

미국 범죄학 박사유학 시절 콜링하시기에 그냥 순종하며 공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잘하진 못했지만), 가난한 가운데에도 오직 목회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돌아온 것은 6개월 시한부 암 판정이었습니다.

하나님 어찌 이러실 수가?

당시 누가 저에게 "고난이 유익"이라는 시편말씀을 이용하면 화가 났습니다. 내가 욥도 아닌데 왜 저를 표적 삼으셨나요? 이리하여 직접 설립한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사임하는 이중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를 붙드신 것은 은혜였습니다.

시한부인생이었던 제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시한부인생을 벗어나게 된 겁니다.

물론 항암치료는 계속되어 어제로 25th를 마쳤지만, 즐겁게 받아들이며,

주님처럼 고난을 통해 참 순종을 배워갑니다.

아울러 그 와중에 허락하신 원목사역을 통해 환자로 치료받으며환우들을 치유하는 이중 은혜(double grace)를 누리며, 새 비전(쉐어링 113 운동)도 발견 수행하게 하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있던, 죄수로 감옥에 있던,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에, "요셉 그는 형통하였더라"는 성경의 평가처럼, 저의 삶이 암과의 투병 중에도 불통이 아니라 형통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기도해주시면 정말로 충분합니다.

기독동문여러분! 우리 정말 잘 제대로 예수님을 믿읍시다.

 

 

 

  고 한경직 목사님이 젊은 목사들이 찾아왔을 때 주신 말씀이라는데...

아, 정말 예수 잘 믿어야겠다.

 

 

                                                                             이흥우 화백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