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자리
우리 동아 사역을 함께하는 선배 목사님의 글을 받았다.
그는 은퇴후 이 사역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으시다.
다음 글....
“ 목사님! 저는요 신학원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개 교회에서 할수 있다면 더 줗을듯 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국의 개 교회가 교역자 길러주고 섬기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치는 것도 귀합니다. *국은 교역자 섬기는 법을 알지 못 하는 듯 합니다.
고로 우리가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저도 늘 생각합니다. 고로 신학원 에서도 그런 실천적인 면을 강조 했지요.
그리고 먼저 목회자의 자질문제가 더 급하기도 하지요.
교역자의 사명감과 행위를 통해서 본을 보일 수 있도록 먼저 교역자의 기본 자세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금일 우리 교회의 모습 중 먼저 교역자들의 일반 교인들 앞에서의 행동과 몸 가짐이 엉망인 듯 하게 저는 느낍니다. 교인만도 못한 교역자들이 가르치겠다고 하는듯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젊은 교역자들 한심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의 강의는 그 같은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학구적 보다는 이론적이고 객체적으로 보일 겁니다.
저는 목사가 평소에 일반 교인들 속에서 희히락락하면서 허심탄회한 행동이 자기들 딴에는 현실 감각으로 교인들에게 가까워지기를 바라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금물로 저는 인식합니다.
저속한 행동과 저질적 언사 등을 교인들 앞에서 사용하는 자가 어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건하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교역자는 일반 교인들과 갭이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허허실실하게 보이는 자가 참된 말씀을 가르친다함이 웃기는 일로 저는 봅니다. 평소에 교역자는 교인들 앞에서 경건성을 보여야 하며 행동거치도 분별이 되어야 하거늘 인간관계는 소원해도 목회자로서의 처세는 분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웃기는 짓 하고 일반 교인들과 장난기 식 놀이하며 농담 하던 자가 강단에서는 경건하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웃기는 일 잘 하던 자가 강단에 서서 거룩하신 말씀을 선파 할 때 과연 교인 입장에서 적응을 하겠는가? 육신적으로는 외롭고 교인들과 담이 있어야 함이 교역자라고 봅니다.
저는 선친께로부터 가르침 받은 중 목사는 일반 교인들에게 안방을 보이지 말라 했습니다(부친도 목회자이셨다- 필자 주).
간까지 보일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내게 잘해도 선을 그어라 하셨는데 그 말씀의 의미가 깊고 오묘함을 목회를 하면서 새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 긴 글을 드립니다만 저는 이런 면을 중요시 하는 강의를 하고자 했습니다. 학구적이요 지식적인 것이야 제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잘 하시기에 저에게는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 같은 것은 사역자들 만 있을 때 해야 할 문제지요. 또 일반 교인들에게는 교인들에게 해당하는 성경을 근거한 자료로 가르쳐야 하겠지요...“
목회자와 교인... 그 필요 상관관계...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목양하는 자가 목회자라면 그 이끌림을 필요로 하는 자가 교인이겠다.
목회자는 일주일 내내 우리 교인을 우리 교회를 어떻게 이끌것인가를 고심한다면
교인은 일주일 내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심하며 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깨우침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주중에도 신앙의 묵상을 놓치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는 그렇지 않다. 그 다수를 소수로 만드는 일이 결국 목양이다.
다수가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추구하며 사는 이가 많은 교회... 비율적으로 높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그들은 세상을 이기며 당당히 천국지향주의로 이 땅을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 많은 교회는 그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내분에 전념한다.
교인간의 시기와 갈등... 목회자와 교인간의 반목...
특히 후자는 결국 교회 공동체의 실패 내지는 소멸로까지 진전하기도 한다.
그 점에서 오늘 은퇴 목사님의 고언은 의미롭다.
목회자는 교인에게 '안방까지 다 내보여서는 안된다'는 말. 갭을 두어야 한다는 직언.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아담 이후의 사람은 본성이 변덕이 많고 악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람은 모두 허물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 허물이 하나님의 대언자로 서야할 목회자에게는 치명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오늘 그런 류의 갈등에 들어서 있는 교회를 살펴보라.
그 목회자와 대치점에 서있는 교인은 바로 그 전까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다. 목사의 허물과 약점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라는 의미이다.
고로 교인과는 갭을 두라는 선배의 고언은, 목회자도 허물 가운데서 성장해가고 있기에 서둘러 노출되는 것이 유익치 않다는 뜻이며 더구나 교회 공동체의 상처를 원하는 사단에게는 너무 큰 호재로 작용하기 때문이겠다.
목회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끝없는 인간 탐구'라고 했다는
또 다른 은퇴 목회자의 말을 떠올려본다.
오늘도 목회 현장에서 그 본질이 아닌
'다른 싸움'에 소진하고 있는 이 땅의 목회자와 교회들을 위해 ...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