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그리고 목양/목양 칼럼

십자가를 어쩐다?

johnleejw 2015. 10. 9. 00:30

십자가 부착의 고민

 

근자에 학우 이승구 교수의 글이 있었다.
‘합동측이 오래 전인 1957년에 했던 바른 결정을 다시 한번 그대로 확언한 이 일이 요즈음 합동측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정상적인 일로 여겨집니다’.
교회당 정면의 십자가 부착을 금하는 것을 합동 총회가 재결의 한 일을 일컬음이다....


신학자로서 그의 말은 합당하다. 그 말의 본 의도는 공감한다.

그럼에도 나는 '목회자로서' 이런 고심을 한다.


그 때의 그 결정이 여전히 오늘도 가치로운 것일까?

1957년이면 6.25의 여진으로 가난과 무지가 온 나라를 덮고 있던 때.
동리에 교회가 들어오면 누구나 와서 기웃대고 정한 수 떠놓고 빌던 여인네들이 새벽 기도로 모여들던 시절이다. 교회당 정면에 걸려있던 십자가는 신비 그 자체였을 터이다. 그래서 총회는 이를 걱정하여 부착 금지를 결의했을 것이고.

 

물론 이를 소급하여 올라가면,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에 대해 전선을 형성하던 때로 갈수 있다. 그들은 교회 안의 어떤 것이든 ‘성물의 형상화’에 예민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다른 곳에 와 있다.
그것을 오늘에 와서 총회가 다시 재론한 것 자체가 생경스럽다(정말 중요한 것들은 잊고서).
한국 교회의 밑바닥 실태와는 동떨어진 논제가 아닐까.

 

오늘의 교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십자가를 ‘우상’(偶像)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아예 도외시 한다는 점이다. 십자가 없는 신앙이 일반화 되고 있다.
오늘 누가 교회당에서 십자가를 본다고 해서 십자가를 우상처럼 높일까?


우리가 진정 우려할 것은, 대부분 교인들의 가슴을 이미 점하고 있는 물질주의라는 ‘내 안의 우상’이다. 십자가 구속의 소망 대신 현세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점이다.

 

교회 첨탑이나 등등에는 허용하는데 강단 전면에 만은 안 된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굳이 십자가를 우려한다면 교인 각 가정에 있는 십자가도, 운전대 옆의 부적 같은 십자가도 제거시켜야 한다.

 

그 결의만을 높인다면 그러면 이제 강단에는 목사만이 남는다!
그것도 또 하나의 문제가 아닐까? 어떤 교회는 건물 구조상 대형 스크린이 그 자리를 점하고 거기에는 확대된 목사만이 있다. 십자가 대신 목사?

 

고민은 이것이다.
어찌하든지 십자가로의 돌아감, 십자가를 상기함, 십자가를 회복하는 것이 오늘의 교회에 진실로 급한 이슈라는 점이다.

 

나는 그래서 이해가 된다.
총회가 열리던 그 교회부터가 예배실에 십자가를 부착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