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09. 9. 7. 09:12

 

자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부모로서의 관심을 보여주는 최고의 방법중 하나이다. 우리가 아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것은 아이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듣는다?하는 것은 단순히 청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훌륭한 청취자는 말하는 이의 소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의 감정과 숨겨진 원인까지 들을 줄 안다. 이는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가. 또 왜 그렇게 느끼는가 하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가능한 것이다.

?오늘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라는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답변은 ?별거 없었어요.?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면 자녀들은 부모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것이다.

어른이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여과 없이 뱉는 것처럼, 자녀들도 나름대로 학교에서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집에 도착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듣는다면 , 그리고 내가 충고하는 것보다도 너의 말을 들어주겠다고 결심할 때 더 좋은 청취자가 될 수 있다. 말 뒤에는 언제나 복합적인 원인과 깔린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집중하여 마음으로 듣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부모의 대화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적절한 신체적인 접촉이다. 부모의 손과 자녀의 손이 , 팔뚝이, 혹은 얼굴이나 등이 접촉되어질 때 거기에는 무수한 언어가 담겨질 수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진 것이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4회, 정상상태를 유지하려면 8회,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2회의 포옹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와 있다.

만일 어린이들이 신체적인 접촉을 받지 못하면 육체적, 정신적, 영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고통 받게 된다고 한다.

자녀들은 자라는 동안 많은 신체 접촉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결핍된 아이들은 그에 대한 갈망으로 성적으로 문란해지기도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안기고 싶은 것인데, 만일 성행위를 통해서만 그 욕구가 채워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두 딸의 아버지이지만, 그들과 혹간 씨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팔씨름도 하고 게임도 한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혹은 저녁에 만나서 격의 없이 포옹도 해준다. 이러한 부모의 행동이 저들과 떨어져 있을 때의 공간을 채워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꾸중 뒤에는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는 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때리시고 어루만지시는?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처럼 자녀의 자존감에 큰 유익이 된다. 이 접촉은 바로 대화이며, 이를 통해 자녀들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리장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