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가 맞다!
4.29주일 수양관에서
광야가 맞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야외에서 맞는 주일에...우리는 인생을 생각하다.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상을 탈취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다.
성경은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
성경은 우리를 광야로 초대한다.
산오름에 비해 광야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디로 가는 건지... 어떤일 이 일어날지...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끝을 만날지.
그러기에 거기서는 하나님의 동행이 절박하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인생을 가르치고 인간을 만지신다.
이스라엘의 40년은 그것이다.
자신들이 할수 잇는 것이 없다. 존심 상한다.
먹는 것도 하늘을 봐야하고 물 한모금도 바위를 깨주셔야 가능하다.
가는 것도 멈추는 것도 자기가 결정 못한다.
그러나 그 동안 그들은 굶지 않는다. 신발이 헤지지 않는다. 매일이 족하다.
아 하나님!
그런 모습으로 가나안을 들어가게 하신다.
오늘 우리네 삶에도 그러하다. 그러기에 광야는 내가 가는 게 아니라 그가 등떠미신 결과이다.
만일 척박한 현실에 던져졌다면 배신의 아픔에 처했다면... 이광야러 떠민 그놈을 탓하지 말라. 알고 보니 주님께 그리하신 것이다.
예수 공생애 초기의 광야도 그렇고, 요셉의 광야 구덩이도 그렇고 다윗이 경험한 광야 굴도 그렇다. 그리고 당신이 처한 광야도 그러하다.
성공 위해 사는 자는 반드시 성공 때문 망한다.
거기서 당신은 죽어야 한다. 자아의 죽음이 필요하다.
부부간에도 애들 양육에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정과 욕심에도.
그 일은 숨가쁜 광야의 체험 중에 가능해진다.
한가지!
산오름은 나혼자 한다. 다른이는 라이벌이다.
그런 광야는 혼자 못간다. 반드시 동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님이 같이 가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믿음의 형제들을 주신다.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가 그래서 당신에게 필요하다.
광야를 맛본 당신은 당신의 형제들을 도울수 있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우리 새소망 형제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