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09. 9. 23. 09:20

감정과 분노

 

바람직한 부모는 자녀의 감정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말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과 행동의 미묘한 차이로도 그들의 감정을 알아 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는 정서적인 장애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할 때, 슬플 때, 화가 날 때, 흥분할 때 눈물을 흘린다. 이를테면,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아이는 우선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한다. 그 슬픔을 발산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나무라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자녀들의 분노의 표현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노란 억제되는 것이 미덕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분노나 분노의 표현 자체가 죄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이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 4:26)라고 지적한다. 분이 죄이니 분을 내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분노가 정당한 감정임을 인정한 것이다. 바울은 분노가 타인에 대한 증오, 그로 인한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 비통, 그리고 원한으로 번져 감을 막기 위해 분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 아래 분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분노를 표현할 때 용납될 수 있는 것과 될 수 없는 것의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화가 났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땅바닥에 구르는 아이,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내던지는 고집통을 보게 된다.

자녀들에게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 있다. 부모는 아이의 막무가내 요구를 들어주든지, 그를 사로잡아 훈련시키든지 택일해야 한다. 가정은 자녀가 아닌 부모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의 분노가 정당할 때가 있다. 이때 아이들은 말로, 혹은 신체적으로 그것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욕설, 저주는 금지해야 한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밖에 나가 나무를 발로 차는 것까지도 좋다. 그러나 사람을 치거나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손해를 끼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십대는 거의 모든 경우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왜 갖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여기가 가장 힘든 단계이다. 그러나 부모가 감정적인 반응을 자제함으로써 단면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깊이 감추어져 있는 상처에까지 다가갈 수 잇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런 문제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도 다짐할 수 있다.

**

사랑하는 델마에게

내가 네게 직접 말하지 않고 이렇게 편지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단다. 네게 말해야 할 것은, 내가 그것에 관하여 얘기하려면 매우 화가 나기 때문이야. 나는 그 문제에 관하여 말하려고 하면, 침착성을 잃고 말할 요점을 잊어버려서 전달할 수가 없게 된단다. 델마,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내 단잠을 깨우는 것은 원치 않아! 나는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늦잠을 잤었지. 오늘 아침이야말로 이번 주간에 단 한 번 늦잠을 잘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단다. 나는 너희들이 엄마의 도움 없이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단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행동은 별로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되는구나.

나는 또한, 네 침실 방문을 항상 굳게 닫아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방에서부터 들려오는 얘기들이 내 기분을 퍽 상하게 하거든. 특히 네 방에 둔 타자기가 언제나 불안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면 걱정이 된단 말야. 타자기란 정밀한 부속품으로 조립된 기계이므로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안 돼. 만일 방바닥에 떨어지면 부서질 거야. 옷도 잘 간수해야 해. 함부로 취급하면 더러워지고 구겨지니깐 말이야.

그럼 엘마! 회답을 기다려도 좋겠지? 안녕. 사랑하는 엄마가

H.기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