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09. 10. 15. 06:16

사역자의 허물

 

내가 중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세계사였다.

왜? 그때 어찌된 일인지 교감선생님이 그 과목을 맡았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한 시간 내내 나만 쳐다보며 수업하는 것이었다. 웬 눈 동그란 아이가 열심히 듣는 모습과 간간이 괜찮은 답변을 하는 것을 보고는 아주 호감을 가지셨던 것 같다.

당연히 나도 아주 아주 열심히 했다. 시험을 봤다. 몇 점일까? 100점. 만일 만점이 200점이었으면 200점 맞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하마터면 역사 선생으로 인생을 결정할 뻔 했다.

 

무슨 얘기인가? 선생이 사랑스러우면 내 실력이 늘어나더라는 것.

아이들을 보라. 선생님에 대한 낮은 호감은 반드시 그 과목의 성적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마음이 떠나있으면 학습 의욕이 떨어지게 된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 목회자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면 우선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는 지키면서 그 말씀 전하나?' ‘말은 잘하네..’.

목사가 싫어지기 시작하면 옳은 말씀도 다 하릴없다. 설교 시간 내내 땅만 보는 교인, 기둥 뒤에 앉는 교인은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목사이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목사는 기억력 아이큐가 200은 돼야 하는 것 같다. 뭐든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게 가능한가?

 

독일 시인 하이네에 관한 얘기이다. 그가 어느 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초인종을 눌렀다.

하인은 안에서 고함을 내질렀다. ‘주인 안 계십니다’

그러자.... 하이네는 중얼거리며 돌아섰다고 한다. ‘그 자식 어디로 돌아다녀?’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있다.

목사의 실수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나 가혹하다. 자기네 강아지 이름 기억못한다고 무능력한 목사라고 성토한다. 주일 광고에서 한 장로의 모친 회갑 광고를 놓친 목사는 두고두고 씹히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아슬아슬한 장벽을 넘길 수 있는 것일까?

목사도 사람, 교역자도 사람이라고 하는 넉넉한 관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목회자를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균형 잡힘이 필요하다. 목회자의 허물이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면 덮어줌이 유익하다는 얘기이다. 단회적인 것이라면 여유롭게 바라봐 줌이 필요하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에도 놀란다고... 한번 어디서 목회자와의 갈등을 가졌던 이는 그 쓴 뿌리를 가지고 가는 곳마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오늘날 작은 개척교회들의 딜렘마가 여기에 있다.

 

‘오죽하면 이층 상가 교회에 까지 찾아왔겠어요.’ 오래 전 개척 교회 시 들렀던 이의 말이다.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전하는 교인들 가운데는 자기 안의 교회에 대한 쓴 뿌리가 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일단 ‘만만한’ 작은 개척 교회에 발을 드려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거기 있는 목회자는 대개 인생 연조가 얇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모르는 신참 교역자들이라는 것. 그래서 조만간 그 상처가 다시 불거진다. 이래서 부딪힘과 상처의 악순환은 반복된다.

결국 그들은 거기를 떠나 또 다른 어느 교회론가 간다.... 정처없이.

 

그러나 건강한 성도는 목회자도 교인도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그 인격의 공사 중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 목회자가 설교도 잘하고 성품도 일등이고 얼굴도 우아하고 흠이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건 사치스런 희망 사항이다. 그도 사람이다. 연약한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넘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차라리 그 목회자의 허물을 내가 담당하기로 하고, 그의 약점을 나의 기도로 승화시키면 모든 것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새벽 기도회 후 각자 열심히 기도하는 시간, 어느 목사님이 강단 위에 엎드린 채 비몽사몽간에 부른 찬송(?)이라고....

 

아, 목사의 실수는 어디에나 잠복해있다. 그는 늘 노출되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 5장 12절과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