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09. 10. 16. 06:07

목회자와의 만남

 

종종 사람에게는 독점욕이 발동한다. 학교를 망가뜨리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은 자기 자식만을 위한 교사에 대한 독점욕의 변장된 양태이다. 한 교회의 교인도 목회자에 대해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관심과 애정을 독점하려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건 목회자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아닌 독점욕에 불과하다.

 

교인과 목회자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수도 있다.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도에 지나는 일은 아닌지 늘 상고할 문제이다.

만남의 절차도 그렇다. 통상 교역자의 휴무일인 월요일에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결례이다. 교역자에게도 사적인 여가는 챙겨줘야 한다. 또한 저녁 설교를 위해 준비할 수요일이나, 주일 예배를 앞두고 예민해지는 토요일에 시간을 뺏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숙한 교인은 이런 면에서 목회자를 배려할 줄 안다.

 

시간 문제 뿐만이 아니다. 혹시 은밀한 상담을 요청할 때에도 신중하게 할 일이다.

특히 여성도의 경우 목회자와의 개인적인 상담은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런 소지를 없애도록 처신할 일이다. 그런 만남은 어느 정도 개방된 교회 사무실이 무난하다. 특히 여성도가 긴밀한 일로 가정의 심방맞기를 원할 때에는 사모를 함께 부르는 것이 무난하다.

 

(빌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목회자와의 전화.... 역시 생각해볼 점이 많다. 전화만큼 이 시대에 편리한 문명의 도구도 없다. 공간의 거리가 상관이 없다. 아무 때나 가능하다. 얼굴을 마주하고는 하기 곤란한 얘기도 전화로는 문제가 없다.

목회자의 사택의 전화는 온 교인에게 24시간 열려 있다. 어떤 목회자도 교인의 전화를 가볍게 처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택의 전화는 목회자 가정생활의 리듬을 여지없이 깨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해외에서 목회를 하며 아내와 예상치 못한 충돌들을 빚어야 했던 대목이 전화 문제였다.

여자 교인들은 아내를 붙들고 이민살이의 고달픔과 애환을 전화로 쏟아내곤 했다. 그러노라면 자정을 훌떡 넘기곤 했다. 특히 국제 결혼을 한 자매들의 가슴 속에 담긴 체증은 여간해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새벽 무렵까지 전화 상담이 이어지곤 했다.

곁에서 보는 나는 ‘어느 지점에서는 끊어야 하지 않은가’ 라고 요구했고, 전화를 받는 아내는 ‘어떻게 온 전화를 박정하게 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분명한 것은- 목회자도 사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류의 전화 에티켓 무지 현상은 어디서나 나타난다.

만일 어느 교인이 파출부를 불러 집안 청소를 시키면서 자리를 펴고 작심하고 앉아서 사택의 전화번호를 돌린다면..., 그 다음의 일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 시간 두 시간 한 나절... 목회자의 집은 어찌될까?

웬만큼 체면치례를 아는 교인도 전화 예절에 대해서는 영 쑥맥인 경우가 많다.

시도 때도 없는 교인의 전화는 목사의 일정을 망가뜨리고, 사모의 하루를 덧없이 흘러가게 한다.

아! 지혜로운 성도는 요점을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전화할 것이다.

그것도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시간인가를 생각하며 할 것이다.

 

(롬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