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leejw 2009. 12. 31. 06:35

대가를 구하는가

 

연말에 구역장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루비누를 나누어줬다가 낭패를 당한 교회가 있다. 어쩌다 입심 좋은 여집사가 그 명단에서 빠졌던 것. ‘내가 남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구 나를 거기서 빼놓는 거야. 고의성이 있는 거라구....’

 

이거 절대 달나라 얘기가 아니다. 당신의 교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의 자원함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본래 무슨 대가를 주고받는 곳이 아니다.

 

로마 교황청을 구경하노라면 교황청의 경비병이 스위스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왜? 그들은 어려서부터 산골짜기를 타면서 훈련된 사람들이다. 그 군인들이 제일 용맹하다고 한다. 그래서 돈 주고 그들을 고용한다. 그런 군인을 용병이라고 한다. 용병은 아무리 전투를 잘해도 고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전투하는 것은 애국심이나 책임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어도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다. 진정 훌륭한 군인은 오직 희생과 충성의 사람이다.

 

신자도 용병처럼 일 할 수 있다! 그러면- 허탕이다.

신자란 군인이 전투력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전도도 잘하고 국수도 잘 끓이고 예배실 청소도 잘하고 헌금도 잘 내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내 자랑이어서는 안 된다.

내 공로가 되면 낭패이다.

또한 남보다 더 오래 한 교회에서 수고하고 더 많이 봉사했을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말하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바울의 고백이다. 내가 사도의 직분을 맡아 이처럼 많은 일을 한 것은 그건 나를 그저 충성되이 여겨주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남보다 충성할 수 있음은 나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여겨주시고 일할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가 감사함은 그저 하나님의 일에 붙여줬다는 것 때문이다.

마찬가지이다.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것은 그 봉사할 수 있는 건강을 주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전도를 담대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용기와 말의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헌금을 남보다 많이 드릴 수 있음은 재물을 더 많이 맡겨주셨기 때문이다.

이웃을 구제하는 것도 그럴 능력을, 그럴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를 주를 위해 할 수 있음은 하필 내게 그럴 수 있는 직분과 기회를 주셨음이라.

아!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고 고백한다.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