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만능 콤플렉스
목회자와 만능 콤플렉스
스펄젼 목사는 '목회 사역의 고뇌와 책임과 압력을 이제는 넘어섰다고 안도해 하는 목회자는 이미 그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긴장과 책임을 잘 대변해 주었다. 그러나 목회자라는 자리가 가지는 필수적인 고뇌가 아닌, 또 다른 압력들이 저들을 짓누르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목하 현대는 갈등의 시대이다.
본래 갈등(葛藤)이란 칡덩쿨과 등덩쿨이 얽힌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일이 얽혀 풀기 어렵게 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교인들은 모두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상처받은 심령을 가지고 교회에 온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언제나웃음을 보여주고 사랑과 희망을 교인들에게 전달해 주며 한 주가의 곤고함을 씻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목회자 자신이 더 큰 스트레스 속에서 한 주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목회자야말로 끝없는 갈등과 긴장 속에사는 특이한 직종의 사람이다.
그것은 수퍼스타같은 만능을 요청한다. 교회라는 구성요소가 부흥은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고, 칭찬과 용기를 주는 말보다는 헐뜯는시비의 말이 오가기 쉬우므로 목회자는 항상 긴장감에 싸여 있다.
하긴 목회자의 고충이 너머 커서 길선주 목사같은 분도 이런 기록을 남겼다.
“성경만 가르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완고하다고 한다. 예화를 많이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만담같다고 한다. 신학적으로 설교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신령치 못하다고 한다. 목회자가 인자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무골호인 (無骨好人)이라고 한다. 학설을 소개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아는 체한다고 한다. 설교를 되는대로 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무식하다고 한다. 목회자가 엄격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압제자라고 한다. 일을 잘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수단꾼이라고 한다. 교제에 둔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멍텅구리라고 한다. 고대사를 말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한다. 현대사를 말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점잖지 못하다고 한다. 설교 소리가 나지막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자장가를 부른다고 한다. 의논이 없으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무능하다고 한다. 좋게 좋게 하면 교인들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다고 한다. 목회자가 젊으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경솔하다고 한다. 의논하여 시끄러워지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지도력이 없다고 한다. 냉철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사랑이 없다고 한다. 목회자가 너무 어리숙하면 교인들은 말하기를 폐물이라고 한다…”
이미 한국 교회 초기에도 목회자에 대한 무차별한 포격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는 소위 지성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박사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의학, 심리학, 공학에서 박사이지 성경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세상의 학위나 지식이 도움을 주지 못함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목회자는 일의 다양성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많이 겪는다. 설교자, 교사, 조직자, 행정자, 상담자, 전도자와 그밖에 병 고치는 능력, 음악지고, 아동지도, 사회 참여, 심지어 취직 알선, 중매, 빚보증 받아주는 일까지도 목회자에게 들어온다.
그리고 목회자는 만나는 사람의 층이 다양하기 때문에 힘든 직종이다. 남자와 여자, 오니과 어린이, 모두 목회자에 대한 기대가 각각다르며 지식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가 목회자를 향하여 요구가 다르다. 그러므로 제각각의 모든 욕구를 다만족시킨다는 것은 실로 어렵다.
또한 목회자가 갖추어야 하는 면도 그렇다.
목회자는 최소한 신앙, 품성, 지식, 능력, 양식 (良識) 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한때, 미혼 여성들의 결혼 상대자 인기척도에 목회자는 맨 밑바닥에 속하는 이발사 다음이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그 선호도가 급상승해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진위는 차지하고, 과연 ‘직업으로서의 목회’는 괜찮은 것인가? 사람들은 좋은 직업의 필수요건으로 보수, 근무조건,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긍지를 꼽는다. 그런 기존으로 봐도 목회자는 불리하기 그지 없는 여건에 근무하고 있다.
우선 목회자들은 ‘퇴근이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비록 교회를 벗어나 가정에 돌아간 다음에도 여전히 그의 생각은 교회 울타리안을 맴돌고 있다. 더구나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교인의 유고 사태에 대해 24시간 비상대기중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군화끈을 풀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 군대의 5분 대기조와 같다고나 할까?
내가 처음으로 지역교회 목회현장에서 떠나 총회 기관에 봉직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해방감에 스스로도 깜작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기관의 일은 비록 출근하여 업무를 보고 있을 때는 시간을 쪼갤만큼 바쁘나, 일단 퇴근하고 나올 때 - 아! 이토록 홀가분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왼종일 심방을 하고, 교회의 일을 하던 목회의 날들은 언제나 내려갈줄 모르는 체증이 걸려 있는 듯 했다. 마치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드는 것 같은 중압감이 언제나 있었다. 이것이 모든 목회자의 현주소인가 싶다.
목회자가 내적으로 겪는 또 하나의 갈등은 권위와 겸손 사이의 갈등이다. 목회자는 지도자이면서 종이다. 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집안으로 말하면 가장이고 팀으로 말하면 단장이다. 사람들을 지도하고 육성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동시에 목회자는 종이다. 목회자를 ‘미니스터’(minister)라고 하는 것도 종이라는 듯이다. 섬기는 자이다. 따러서 목회자는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있어야 하고 또한 종으로서의 겸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 권위와 겸손은 반대되는 양면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사이에서 최선을 위한 갈등이 생기고 자기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지만, 사람에게는 종이아니라 지도자이다”라고 설명한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고 사람은 권위로 대하겠다는 뜻인가? 옳지 못하다.
이제 막 목사안수를 받은 아는 후배 한 사람은 실제로 목소리를 착 가라앉힌 채 근엄한 음성으로 전화를 해와서 한동안 나를 어리둥절케 했다. 그의 말인즉슨 목회자는 ‘카리스마’(charisma)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 한국 교회의 신도들 가운데는 스스로 어떤 권위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부흥사들의 무식한 쌍소리에 희열을 느끼며 박장하는 이들도 있다. 거기에 “아멘, 아멘”하며 엎드러진다. 이런 요소들이 일부 목회자들을 더 권위지향형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마조히즘 적인 심리적 경향이랄까.
그러면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종으로만 살면 되겠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와 겸손은 같이 가야 한다. 그러자면 계획과 아이디어에 있어서는 지도자로서 힘쓰고, 실제적으로 일할 때는 언제나 종같이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언제나 부드럽지만 실제 속은 강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외유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양보하는 생활, 무엇이나 받아들이는 자세로서 이를테면 겸손이다. 내강은 신앙, 목회철학, 목표에 해당될만한 것으로 이것들은 변하지 않고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목회현장은 목회자에게 끊임없이 만능의 역할을 기대한다. 평신도 자신은 못할지언정 나의 목회자 만큼은 인격적으로도 성숙되고 완벽한 생활을 하기를 주문한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목회자는 사실 수없이 고뇌하고, 아파하고, 또 좌절하는 것이다. 한 평생을 성실하게 일했던 R.M. 멕케인은 자신의 시계표면에 지는 해를 그려놓고 그 밑에 서녘 노을을 그린 다음 ‘일할수 없는 밤이 속히오리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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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라면 당연히 마땅히 다음 사항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1. 바쁜 일이 언제나 성공이나 발전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목사가 등사기를 작동하는 일이나 교인들을 위한 사소한 심부름을 하는 일, 또는 하루, 한 주, 한 달 활동에 대한 부실한 계획을 세움으로써 과로할 수 있다. 사람의 작업의 질은 그 양보다 훨씬 중요하다.
2. 목사가 자신의 활동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목사 자신과 교회에 최선이 되는 문제들을 빠뜨려 놓기 쉽다. 사람이 우선 순위를 일차적으로 고려하기 위해서는 시간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3. 특별히 정해 놓은 시간에 집무를 돌보라. 정해진 시간에 편지를 쓰고, 일정한 시간에 전화를 걸고, 일정한 시간에 신문을 읽도록 하라.
4. 당신의 시간계획을 교인들에게 알리되, 특히 당신의 아침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치 않을 수 없다는 말을 빼놓지 말라.
5. 당신이 설정해 놓은 목회 및 시간의 한계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 한계 안에서 생활하라. 무슨 일이든지 모두 당신이 도맡아 하려고 들지 말라. 어떤 일은 다른 사람에게 분담시키도록 하라.
6. 몇가지 세련된 목표를 매일, 매반지, 그리고 일년 단위로 세우도록 하라. 계획상 목표점 및 목표 일시를 정립하도록 하라.
7. 메월 말에는 평가회를 가지도록 하라. 당신이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라. 당신의 목회사역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단순히 궤도를 겉돌고 있는지 점검하여 보라. 목회자로서 당신이 누리는 시간은 고귀하다. 시간은 인생을 엮는 재료이다.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연구실에서의 시간을 통해 당신의 모든 사역을 세심하게 반성함으로써 반드시 알찬 보람을 맺도록 하라.
W.A. 크리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