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개강 수업
첫 수업에서
이번 학기는 총신대의 월요일 오전 수업에 들어간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두 학생이나 그런 얘기를 했다. 학교가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로 편입하려고 한다. 한 학생은 휴학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의 말을 다 들은 뒤 말했다.
‘나도 그랬었다. 나도 이 학교가 양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신대생을 만났다. 그는 놀랍게도 우리 학교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했다’.
오래 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없이 학교를 욕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학교는 틀렸어. 교실이 낡았고 운동장이 좁고... 꼰대는 쓸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그런 녀석 치고 공부를 제대로 하는 녀석이 없다.
우리는 너무도 생각없이 자기 존재나 자기 현실의 가치를 간과한다.
내가 태어난 이 나라, 이 대한민국을 폄하한다.
자유 대한민국의 풍요를 따먹으면서 이 나라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들은 비겁한 자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배우자를 한없이 깎아내린다. 심지어는 자기 자식들 까지 비난한다.
그런 삶의 체질은 교회로 까지 옮겨진다.
‘이 교회는 왜 이래..’
내 교회를 폄하한다. 불평의 눈으로 교회 안팎을 두루 살핀다.
내 교회 허물이 가장 잘 보인다. 왜? 내가 그 안에 있기에.
만일 내가 옆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그 교회의 허점이나 허물이 더 잘 보일 것이다.
당신은 이 교회에 어떤 존재인가?
해 아래 새 것이 없듯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 우리는 천사를 목회자로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또는 완전한 성품의 옆 교인들과 지내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진행형일 뿐이다. 용납하고 용서하고 품어야 한다. 나 역시 도 다른 이들의 용서가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우리 성도들은 특히 언어에 유의해야 한다.
가시 돋힌 언어가 아니라 품어주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서로를 헐어내리는 말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말이어야 한다.
주께서 배속해주신 내 나라, 내 가정 그리고 내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사는 자는 늘 감사한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