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안창희 권사님의 20주기를 보내고
지난 주일 오후 급한 대로 일을 마치고 문산으로 향했다.
모친 추도식은 형제들의 집에서 돌아가며 섬기기로 했던 바, 금년은 둘째 누님 댁의 차례.
금년에 목회 사역을 마치는 매형을 위로 차 의미 있는 자리였다.
내가 예배 사회를 보았다.
기도는 큰형 이준우 장로, 말씀은 매형 서동일 목사님, 식기도는 둘째 형 이덕우 장로. 해외에 있는 동생 외에 남자 형제들은 다 모인 셈이다.
외아들이 금년 가을에 목사 안수를 받는 누님 내외는 큰 흠 없이 그 힘든 여정을 마치고 있다. 서대경 전도사는 지금 충신교회에서 교역자 수업을 잘 받고 있다. 부친을 능가하는(?) 총명한 아들이 누님 내외에게는 못내 자랑스럽다.
91년도 봄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니.
너무 아쉽고 어머니라는 제목은 그래서 내겐 눈물이다.
당시 숭의여중의 교목으로 분요하던 나는 임종 두달여 전부터 서울 형 댁에서 지내시던 모친을 마음으로 섬기지를 못했다. 저녁마다 있던 예배를 인도하며 그게 내게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안수 기도에 익숙치 못하던 나는 말씀 후의 순서로 어머님의 환부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일이 힘이 들었다.
아, 그게 목회자 된 이 셋째 아들이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었는데...
큰 형님은 정확히 모친의 임종시간을 상기하며 기도했다.
남다른 효심이 가득한 형은 그래서 늘 아래의 형제들에게 큰 존재이다. 모친의 소천 며칠 앞에 있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지자제 선거에서 큰 형은 군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영전에 꽃을 드렸다.
그로부터 벌써 20년의 세월...
우리 형제들은 모두 인생의 중하반기로 접어들었다.
‘우리 20년 후에는 어떨까...’ 라는 형님의 멘트에 모두가 잠잠해졌다. 인생 날아감을 생각하며.
정말 모든 형제가 자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잘’이란 반듯한 삶을 말한다. 결코 후회롭지 않은 그런 삶.
우리들은 그렇게 다짐을 나누어 갖고 주일 늦은 저녁 뿔뿔이 나뉘어졌다.
'살며 생각하며 > 저마다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척교회 ․ 농어촌교회 목회자 가족의 쉼을 통한 회복과 축제의 자리... (0) | 2011.06.14 |
---|---|
오월의 남이섬 (0) | 2011.05.08 |
위대한 탄생과 신학교 (0) | 2011.04.03 |
만남 또 만남 (0) | 2011.04.01 |
사람과의 문제에서 '절대 선'은 없다 (0) | 2011.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