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교회 험담하기
제목이 좀 그렇다...
아예 교회 이야기 자체를 집에서는 하지 않는 신앙인 부부... 그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 아예 신앙이란 단어 자체가 집에서는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은 이 시대의 많은 가정의 실상이다.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또 다른 문제를 언급하려 한다.
쓸데없이 집에서 자식들 앞에서 교회를 험담하고 목회자를 깎아 내리는 말을 거침없이 내 뱉는 신자들 가정...말이다.
농부이던 부친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보령 산골 동리에 교회를 개척하셨다.
그로부터 3~4년간은 당신이 직접 설교를 해야 했다. 그 후 이 작은 교회에 교역자가 부임해 왔다. 대개는 신학생 전도사들이 왔던 것 같다. 목사님들은 다 읍내나 도시 교회 몫이고 그 빈약한 시골 교회에는 초년생 전도사들이 와서 몇 년 하다가는 목사되고 나서 큰 교회로 떠나갔다.
그래서 내 어린 날의 기억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교역자들의 얼굴이 복잡하게 겹쳐 있다.
그러니.. 얼마나 그들의 시행착오가 많았을까! 실수는 또 그 얼마였을까.
이제 생각해보면, 당시 뒤에서 교회를 떠맡다시피 섬겨야 했던 우리 부모님의 고충은 이루 말 할 수도 없었으리라 싶다.
갓 신학생 된 이들이 교회를 이끌며 얼마나 사리에 맞지 않는 처신이 처리들이 많았겠는가.
그러나... 나는 부모님 두 분이 앉아서 교역자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이제야 상기하는 것이지만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심지어 어느 해에는 -
목회자가 한 여교사와 야반도주를 한 사건도 생겼다. 이건 시골 면소재지를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6.25 동란 이후 그 동네에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 때 두 분은 마주 앉아 긴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때 내 귓결에 또렷이 들린 말, ‘다 사람의 일 아니겠소...’.
그게 전부였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사건으로부터 교회가 빠른 속도로 회복케 하셨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빨리 잊어주었고 지역 교회는 후임 교역자의 부임과 더불어 안정으로 나아갔다.
내 부모님들에게 교회는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었다.
자신들이 십자가를 만들어서 세우고 한명씩 사람들을 불러다 자리를 채운... 농사보다 그게 더 주업이었던 그런 교회.
늘 노심초사였다.
그 걱정을 자식뻘 쯤 되는 젊은 교역자들은 배나 가중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럴 때마다 이 분들은 ‘그저 기도합시다..’ 이러며 모든 일들을 감당해 나갔다.
이게 내 어린 기억 속에 있는 그분들의 교회 섬김의 지혜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게 장로이고 권사이고 교인이다.
그런 여유로운 향수가 나를 목사의 길로 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오늘도 지혜로운 신앙의 부모라면 조심해야 한다.
식탁에서, 자녀들 앞에서 교회를 비난 하지 말라.
목회자를 험담하지 말라. 자식들의 잠재의식 속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쓰레기를 던지지 말아야 한다.
‘거참, 이 목사 말야...’ 이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목사님’- 이렇게 불러야 한다. 그러면 정이 간다. 사랑으로 품게 된다.
무엇보다 사랑스런 내 자녀들이 목회자를 존중하게 되고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
목회자와 이상하게 척을 지고 교회의 사사건건을 불평스런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있을수 있다. 십중 팔구 부모의 그 변질된 유산(?) 덕일수 있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지도 않는다. 이러면서 평생 교회를 다닌다니 이 또한 비극 아닌가...
(딤전5 :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
총신대학원 양지캠퍼스 교회당의 석양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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