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로 하시다(10) -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
마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2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마2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20: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마20: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20: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마20: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마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20: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마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마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우리는 마태 13장에 가득한 천국의 비유를 마쳤습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에덴동산 이후 망가진 피조세계를 다시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역사는 그 날을 향하여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개인이 태어나고 죽고 민족과 나라가 흥망성쇠를 이루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과정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만드시는 일에 외아들 예수를 제공하시고 그 일들을 이루어가는데 사람들을 사용.
마13장에 나오는 천국의 비유들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지상에 이루어져 가고 있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순종이 있는가 하면 거절... 변질..부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끝내 이루어집니다.
품군의 비유는
오늘 우리는 다른 장에 나타나는 천국의 비유를 대합니다. 마태 20장에 나오는 포도원의 품군들입니다.
이는 해석이 좀 난해한 비유로 알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유 역시 전체 문맥의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앞 19장에는 바로 그 부자청년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영생을 것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는 계명을 지켰고 덕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의 부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를 것이라!
그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그는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주님은 청년의 돌아가는 모습을 슬프게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참 어렵다.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감이 쉽다...
제자들은 놀라서 수군수군 거렸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우리는 무엇을 얻으리이까.
주님은 답하셨습니다. 그 나라에서 너희에게는 영예와 보상이 있다!
그러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대 역전입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많다고 하십니다. 이게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20:1부터 포도원 품군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가 다 끝나는 20:16절에도 또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약간 다르지만 19:30절과 같은 내용입니다. 두 구절 사이에 이 비유가 끼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포도원 품군의 비유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전, 대 반전의 모습입니다.
비유의 전개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기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집주인이 있습니다.
그는 품군을 얻어 농장에 들여보내기를 원합니다.
그가 나간 곳은 장터입니다. 일당노동자를 찾으러 갑니다.
장터는 아고라로 표현되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철학을 논하고 각자 자기 주장을 펴기도 하고 물건 매매도 하고 공연도 했습니다...
주인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여기 나갔습니다! 일군 구하러! 5차례에 걸쳐서 구인은 실시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9시, 정오, 3시, 5시...
이상한 일이지요? 당시 노동관례는 오전 6시~ 오후 6시 까지 일하는 것입니다. 12시간 일하고 하루 품삯 1데나리온 10만원을 받습니다.
자, 이른 아침 들어온 일군들은 오전 6시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12시간 일하고 관례대로 노임을 받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 들어오는 이들은 적게 일하게 됩니다.
고로 1차 입장자 외에는 정상적 노동이 아니며 그들은 노임을 다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써주시기만 한다면 ...’ 이것이 그들의 심정이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9시에... 정오에.. 오후 3시에 그들은 포도원에 입장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인은 제 11시에도 장터로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오후 5시입니다.
마20: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마20: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오후 5시 까지 서성이던 일군들을 상상해보세요. 우리중에 실직의 아픔이나 구직의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은 가슴으로 이해될 듯합니다.
그들은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어갑니다. 하루 벌어서 나와 가족을 살리는 일을 해야하는데... 그러나 아무 소망 없이 날이 저물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인게 말합니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아무도 우리를 돌아보는 이가 없나이다! 이건 비명입니다. 절규입니다.
주인의 말을 듣어보십시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이게 복음 아니고 뭐입니까? 너희도 들어오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귀를 의심할 만 합니다.
그저 나를 써주시겠다는 사실 하나만도 감격입니다. 일거리가 있다는 사실로도 감사합니다.
임금 공급
그렇게 되어 각기 다른 시간에 부름받은 일군들이 그 포원에서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마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맨 나중에 온 자부터 임금지불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맨 뒤에 선자, 즉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들외에는 모두 1데나리온 자격이 없습니다. 1일 품삯은 기대조차 못합니다.
그날 문제는 주인이 임금을 청지기를 통해 지불하면서터집니다.
맨 먼저 받게된 이는 겨우 한 시간 일한 자입니다. 그저 주인의 선처대로 받을 뿐입니다. 할 말도 없습니다. 당당한 것은 주인과 1데나리온 계약을 맺은 맨 뒤에 선 자 뿐입니다.
보십시오.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너의 품삭은 이것이라.. 1데나리온!!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본인도 놀랏지만 나머지 사람들도 더 놀랍니다.
머릿속으로 계산이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주인이 미쳤나?? 이상한 일이다.
그래...그렇다면 나도 횡재하는 것 아닐까?? 각자 계산에 바쁩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을 보십시오.
오후 3시 입장한 자, 정오에 온자, 그리고 9시에 일하러 온 자... 모두에게 같은 일 데나리온이 지급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에게도 한 데나리온이 갑니다.
본문에 보니... 저들은 격분합니다. 집주인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우리는 저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더 많이 일한자가 더 많이 받아야 돼?? 아니면 불공평이야.
이게 현대의 경제원리입니다. 아마 이 시대의 노동조합이 그 말을 들으면 큰 일 났을 것입니다. 노조투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악독 기업주물러가라...
그런 공식에 길들은 아담 이후의 우리 인간들은 은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남이 받은 은혜를 시기할 뿐입니다.
저들이 분하여 떠드는 소리가 주인에게 까지 들립니다.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들... 그들만 12시간 일했고 정상적 노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다 혜택을 입은 자들입니다. 자기의 수고에 비해 더 많이 받았습니다. 할 말도 없고 다들 감사해야 할 뿐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왜 저녁때 들어온 저 자도 한 데나리온이야?? 왜 나와 같이 취급해?
결국 그날 거기에는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노임 받고 감동하는 자. 노임 받고 불평하고 주인을 무시하는 자.
은혜을 입고 감격하는 자. 은혜를 입고 그것을 간과하는 자.
그것이 나중 온 자, 먼저 온 자들입니다.
마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한 자와는 다르다!
주인은 설명햇습니다. 내게는 잘못이 없다. 원 계약대로 정당히 행했다. 오히려 부족한 자들에게 넘치는 은혜를 덤으로 주었을 뿐이다. 저들도 돌아가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계를 살려야 한다. 그게 내가 한 일이다.
왜 불평하는가? 내가 선함으로 악하다고 하는가?
이 날 감동하는 자가 나중 온 자요 불평하고 주인을 적대시 하는 자들은 먼저 온자들입니다.
각기 다른 품군들
집주인은 하나님이며 품군들은 뭇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품군으로 포도원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교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은 천국이며 교회를 상징합니다.
죄 지은 인간들은 일터를 잃은 것과 같다. 그들은 세상이라는 장터에서 서성입니다.
이런 자들을 찾아 주인은, 주님은 이른 아침에 이 땅에 친히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종을 시켜 일군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 주인이 직접 품군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내 포도원에서 일하라. 이 주인의 마음은 곧 주님의 마음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 말씀하시므로 우리가 이곳에 있습니다.
예수 아무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각기 믿게 되는 형편과 과정도 천양지차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속에서 진행된다고 볼 때 사람들은 시차를 두고 입장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른 아침에 들어간 자들은 아담부터 노아까지 구원받아 천국에 간 자들이요
9시에 들어간 자들은 노아 때부터 아브라함 시대까지 사람들이다.
정오에 들어간 자들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모세까지요 오후 3시에 만난 자들은 모세 시대부터 그리스도 때이다. 가장 늦은 오후에 만난 자들은 그리스도 때부터 최후심판이 있을 마지막 때까지의 사람들이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더 단순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된 자는 유대인이며 나중 된 자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사실 오늘날 늦데 들어온 우리 이방인들...한국교회 성도, 중국 교회 성도, 미국교회 성도들... 이런 교회가 이스라엘의 교회보다 번성합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 당시로 가볼수도 있습니다.
먼저 된 자는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종교적 업적에 만족하고 이방인들과 죄인들을 업신여기는...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무언가 자기들에게 특별한 대가가 주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그들은 그 사회에서 지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보다 죄인이나 세리 창녀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를 오늘이라는 우리 현실에 이렇게 적용 해볼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된 자는 어릴 때 예수 믿거나 모태신자, 나중된 자는 나이들어 늦게야 신앙을 가진 이들...
먼저 된 자는 종교적 분위기에 자란 사람, 나중된 자는 미신이나 불신앙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람...
한 지교회를 놓고 봅시다. 먼저 된 자는 교회 개척 때부터 나왔다든가 오래전에 등록한 사람, 나중 된 자는 늦게 교회나왔거나 최근에야 등록한 이들 ...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 영적 세계에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 면에서 저는 먼저 된 자입니다. 모태신앙이요 소굽장난도 설교 놀음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나의 모습은 초라합니다. 대학시절에 예수 믿고서 목사된 동기들을 압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존경할 목회자들입니다. 나중된자가 먼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모태신앙인가요? 교회 경력이 20,30년입니까?
데나리온은
본문의 한 데나리온은 예수의 생명을 뜻합니다. 데나리온을 받았다? 구원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인간들은 원수마귀의 꼬임에 빠져 자신의 육신을 따르고 놀며 일하지 않습니다. 정터에서 인생을 허송합니다.
‘우리를 품군을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라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초대하는 이가 없다는 뜻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지 않아 놀고 섰는 자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통해 초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 텐데도 주인은 오후 5시에도 품군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시려 합니다. 그들에게도 데나리온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선물입니다.
문제는 먼저 부름 받은 이들입니다. 저들은 자신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나중 온 자들을 멸시합니다. 형제들을 가로 막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적은 남보다 내가 앞에 있다, 내가 더 많이 일했다고 하는 공로의식임을 기억하십시오.
공로의식은 남과 비교할 때 한없이 사악한 것이 됩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세워진 당신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십니다.
우리를 서로 비교하여 10명 나은 자를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뽑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그 기준에 서기를 원합니다.
이때 옆 사람이 잘하면 나도 잘할 수 있습니다. 옆 사람이 못하면 나도 못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로 성도들은 서로 간에 라이벌이 아니라 파트너입니다.
서로 도우십시오.
늦게 예수 믿고 늦게 교회 들어온 이가 잘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공로 내세우고 비교하면 은혜가 사라집니다. 갈등만 커집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입은 큰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해야합니다. 그래야 고귀한 선물을 지킬수 있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천국에 관한 우스개가 있지요.
천국 가보면 놀랄 일이 많다. 1. 꼭 천국 올 줄 알았던 이들이 안왔다. 2. 천국에 오지 못할 줄 알았던 이들이 왔다. 3. 나 같은 자가 이 황홀한 천국에 왔다... 이는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얘기입니다. 그에 따라 알곡과 가라지는 갈라지는 것이요 좋은 고기와 쓸모없는 고기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단지 구원 데나리온으로 제한 되지 않습니다.
그것디 주어진 원리는, 그 이후의 신앙의 삶에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될수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상급과 보상도 그러합니다. 전적으로 주께 복종하며 그를 위해 희생했던 자들에게는 백배이상의 보상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그러나 그 보상에 대한 결정권은 주의 권한에 있습니다. 그는 절대 공평, 절대 주권으로 그것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그 누가 예수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다고 해서 그가 영예의 자리를 요구 할수 없습니다 . 주님의 판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주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그의 허락하심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재물로써 대단히 주를 섬길 수 있다면? 그에게 그럴 재물을 주신 주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중요한 직분을 통해 주를 많이 봉사한다면? 그에게 그런 힘을 주신 주님을 높이셔야 합니다.
만일 남다른 은사와 달란트로 교회를 섬겼다면 그것을 주신 그분을 높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나라에서 주시는 주님의 보상은 주님만이 아시는 깊은 판단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먼저된 줄 아는 자가 나중되는 것이니다.
산골에 태어나 산골 교회를 섬기며 자신에게 주신 몇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있습니다.
남다른 가정환경에 총명한 머리에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큰 교회 일구고 큰 목회하다가 세상을 떠난 유명 목사님이 있습니다.
누가 그 나라에서 먼저 된 자일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세상의 판단이 뒤집히는 곳이 그 나라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됩니다. 허지만 그가 우리에게 주실 영광의 자리는 그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영광의 자리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원망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상급은 처음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되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 가족과 함께 기도원에 갔습니다.
마침 언론에도 나오는 유명강사 목사님이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 은퇴하여 아들 목사님이 이어서 목회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들 목사가 남여 전도회도 없애고 이것도 없애고 그러더랍니다.
은근히 걱정된 아버지는 젊은 아들 목사에게 걱정 어린 훈수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전도회도 없애고 봉사직들도 없애고 그럼 되는가? 당회도 있으니 상의도 하고 그러시게. 장로도 34명이나 되는데 할 일 없으면 다 떠나네...
그날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 교회에서 30여년 가까이 목회한 경험자, 성공한 목사로서의 생각이요 조언이기에 옳을수 있다 좋은 조언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에 대한 언급 중 “ 그들도 할 일이 없으면 떠난다??”
그런 예를 많이 봐 왔다는 얘기요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존재의 확인이요 위치를 보장한다는 말입니다. 대우를 받는 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거 보장 못하면 교회를 떠난드라...
저는 그게 한국 교회의 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구교인들의 수준이지요. 일반 사회의 조직통념에서는 그게 맞는 말입니다. 그 조직에서 자기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그만둡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곳이어야 합니까? 신앙의 세계도 그런 것이 맞나요?
내 존재가 확인되고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고... 인정받을 자리가 주어져야 해. 그러지 않으면 내 양에 안차면 떠나... 그래서 오고 가는 숟한 교인들... 이 교회에서 죽도록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고 세워진 장로 권사 집사... 그러나 수틀리면 미련없이 보따리 싸들고 남이되는 그런 현실...
주님이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이목사야, 지금 너의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줄 아니? 정말 가치있는자가 누구가?
잘 눈에 띄지 않는 자란다. 주일에 결석해도 잘 표가 안나는 사람, 사람들이 별로 찾지도 않는 교인... 조용히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그런 교인이 소중하단다.
여러분!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하지만 더 힘든 것은 뒤에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누가 특별히 알아주지도 않는데 자기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는 이들입니다.
주일에 나올 때 이것저것 맡은 일이 많아서 봉사하는 이들도 귀합니다. 그러나 아무 할 일도 없이 나오시는 이들...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차분히 예배자로서 참여만 하는 성도들... 그런 신앙의 차분함... 이게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중요한지요.
선교회 회장이나 다락방 순장이나 맡아서 일해본 분들은 아실것입니다. 열심히 한해 수고합니다.
그런데 다음해 그 회장을 내놓고 난 뒤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주 앞에 서십니까? 변함없이 예배와 모임에 참여하십니까? 못합니다. 왜? 위치가 주어지지 않고 인정받음이 없음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아주 초라한 아기 신자로 남을 것입니다.
먼저된 자였으나 결국은 나중된 자가 될 것입니다.
성도! 우리는 다 포도원에 부름받았습니다. 먼저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교회에 나온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소리를 때로 듣습니다. 내가 이 교회의 누군데... 내가 여기서 한 일이 얼마인데....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야?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지? 나보다 늦게 들어온 아무개가 나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 안되지. 나는 아침부터 저녁때 까지 포도원에서 일 했어...
봉사했고 수고했고... 저 치가 한 일이 뭐가?
그거 아닙니다. 그것을 벗어나십시오. 우리는 서로 견주며 종교놀음해서는 않됩니다. 복음 앞에 서십시오. 십자가 복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포도원 주인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신앙의 지각생들에 지극한 애정을 가지십니다. 그분은 선하시고 너그러우십니다. 끝까지 자비로우십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위에서도 거기 서있는 군병들과 비웃는 자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십니다. 심지어 십자가상의 강도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끌어안습니다.
그 주님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소원하십시오.
매듭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집주인은 포도원 운영 위해 사람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 데나리온을 나눠주기 위해 포도원을 마련했다! 사람들에게 일을 주기위해 포도원을 준비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포도원은 은혜의 마당입니다. 천국이요 교회입니다.
이미 그 울타리에서 일하는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이제 그의 결산의 시간은 다가옵니다. 날이 저물매...
한 시간 일한 일군은 품삯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격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는 다 허망하고 허전한 인생이라는 공터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날이 그대로 저물면 어둠속에 사라져 갈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에서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영광의 날 보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데나리온이라는 구원의 은총... 이것은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도 없습니다.
이제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합시다.
함께 부름 받아 이 포도원에서 함께 이들.. 이 일에 함께하는 이들을 소중히 하십시오. 신앙의 지각생들을 존중하십시오.
은혜 입은 자의 눈, 그 맘으로 일생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빕니다.
시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116: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시116: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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