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그리고 목양/건강한 교인이 알아야 할 200가지

교회의 분쟁

johnleejw 2016. 1. 21. 11:00

 

 

왕이 없는 사람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바이블 스쿨에서의 기억이다.

 

이른 아침의 중보의 시간- 그날은 동부 유럽 쪽 한 나라의 학생 6명이 나왔다. 그들은 각각 신문지를 뭉쳐 만든 검을 든 채 원을 만들고는 바깥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잠시 후, 갑자기 원 안쪽을 향해 돌아서더니 서로를 향해 칼질을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등에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이 쓰여져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은 결국 모두가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교실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남았다.

  이 스킷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을 생각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전투 중'에 있다. 그것도 교회마다 "내분"이라는 지극히 파괴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서 교회가 마땅히 행해야 할 싸움, 즉 사단과의 싸움, 세상의 그릇된 풍조와 싸우는 그 싸움을 싸울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사회는 교회에 별 기대를 갖지 않는다.

  때로, 좀 잘 된다는 교회도, 그건 자기네끼리 만의 잔치일 뿐.

      

시대적으로 교회의 급성장기를 누렸던 목회자 1세대들이 대거 2선으로 물러서고 있다.

  리더십 교체와 더불어 숨겨진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퇴임자와 후임자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과 더불어 다- 사그러질 것이다.

 

  정작, 지루하게 남는 문제는 다른 것이다!

  , 이미 한 교회에 터를 잡고 있던 전통 세력과 새 리더십의 갈등이다.

 

교회마다 그들이 간직한 세월이 전통이라는 권위를 갖게 되고, 그래서 거기 있던 교인들은 ""를 확보하고 "텃세"를 감행하게 된다.

   

특히, 장로교의 경우에 기존의 당회원은 세력 집단화되면서 새 목회자를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그것을 보며 뒤에 자라는 교인들은 또 그것을 배워가고 있다.

  

 

일예로, 요즘의 새 목회자 청빙 세태를 눈여겨보라.

 

학위와 목사의 건강 진단서가 필수다(질병을 안고 살았던 칼빈 선생이 오시면 갈 교회가 없다). 사모 소개서와 이력을 요구한다(사도 바울이 와도 부임할 교회가 없다).

 

근자에는 범죄 사실확인서를 경찰서에서 받아오도록도 한단다.

게다가 목회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어찌 목양(牧羊)의 내용이 피목양자들에게 승인 받아져야 하는가.

 

 이처럼 목회자 청빙 문화는 급변하고 있다.

 

요즘은 중형 교회들도 젊은 목사, 심지어 30대의 목사를 선호한다. 한 장로가 넌지시 귀뜸해줬다. "우선... 다루기가 쉽지 않겠어요??" 길들여서 쓰겠다는 완곡한 표현.

       

- 오늘날의 교회에서 목사는 잘하고 있고, 장로는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우리들의 교회는 과연 주님이 왕이신 그 교회가 맞는가? 그분의 뜻에 모두가 항복하는 교회인가 하는 것이다. 함께 주님을 제대로 섬기며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자하는 지순한 공동체 맞는가? 그래서 세상의 양심으로 빛으로 남는 교회이기를 소원하는가?

  

유학 후 부임한 교회에서 2년간 버티던한 후배 목사는 결국 해외로 떠났다.

 

가며 그는 신음했다. "한국이 싫어요, 한국 교회가 싫어요." 서울 북부의 한 교회이다. 보다 못한 교인들이 나서서 장로 전원의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그들은 개척자이기도 한 1대 목회자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 2대 부터는 어림없다."- 그들은 별러왔다.

 

  그래서 아무리 선한 뜻을 지닌 목회자가 오더라도 심각한 좌절을 겪든지 아니면 아예 바지 사장의 처지로 들어가게 된다. 정상적인 '목양'이란 개념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교회 개혁은 목회자의 전횡을 제도적으로 막으면 된다고 외친다.

 

그러나 실제로는 타킷을 잘못 잡고 있다. 이미- 우리 한국 교회는 세력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목사라기 보다는 당회원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되었다. 이런 현상은 도시나 농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교회마다 허망한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그것은- 지난날의 교육 부재의 극치요, 훈련 부재의 결론이다. 그리고 묽어져 버린 복음의 결과이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를 버린 연고였다.

  그 결과는-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오늘을 말함이 아닌가.

 

많은 교인들이 신앙이란 그저 교회 경력을 쌓는 것이요 직분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왕이 아니시다.

   

! 자기 부인(否認)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세상 속에서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것-을 이제라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가 그 앞에서 삶으로 가야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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