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연 이런 삶
70을 훌쩍 넘긴 권사님 댁.
심방 예배를 마친 후, 대화 바람이 일어났다.
‘글쎄, 요 며칠 이런 일이 다 있네요. 제 고교 동창얘기인데요...’
남편은 군에서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12.12사태가 터졌다. 남편은 신군부 반대 측에 있었다. 별안간 군복을 벗게 되었다. 군에서 쫓겨난 그의 분노는 삶을 망가뜨렸다. 가족들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징계할 때에는 거꾸로 세웠다. 아내에게도 잔인했다.
결국 아내는 3남매를 데리고 도망쳤다. 매일 매일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제주도로 갔다가 나중에는 서해안 한 읍소재지에 정착했다. 아내는 그렇게...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어느 날,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길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자를 조회해보니 아내도 자식들도 있었다. 반신은 쓸 수도 없는 상태의 남편을 아내는 병원으로 가서 만났다. 그게 38년 만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국가유공자 신분이었다. 취직도 자녀들 학비도 다 국가의 혜택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 누워있는 남편에게 통곡했다. ‘당신 인생 잘못 살았지’. 남편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홀로 연금으로 생존(!)하고 있었다. 집은 30년 넘게 방치되었고 연희동 동리에서는 폐허를 방불한 그 집으로 인해 주변의 시세가 내려앉았다.
이제 70넘은 아내는, 몸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그 남편을 위해 병원을 끊임없이 드나드는 나날이 되었다.
p.s 바로 그 주말, 교회에 들른 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듣게 된 말은...
아들이 첫사랑을 잃은 후 사십후반에 까지 결혼을 안 하고 있다. 첫사랑 아가씨의 부친은 12.12사태 때 정승화 측근이었다. ‘내가 구국공신이야’그러고 다녔는데 갑자기 군복을 벗었다. 그는 울분을 품은 채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로 떠나갔다. 그렇게 그는 첫사랑과 강제 이별을 했다.
그러면- 이 아가씨의 부친과, 위의 그 남편은 친구나 동료이지 않았을까.
아... 격랑의 조국 현대사는 숱한 가정, 사람들에게 눈물을 뿌려 놓은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