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생
그 어른은 천안 역에서 타서 내 곁에 앉았다
조치원 사는 데 천안에는 처가댁이 있단다
아직도 싱싱한 그는 80세는 족히 넘어 보인다
사탕 두 알을 꺼내주며 입을 연다
‘사람 망하는 거 순식간입디다’
아, 이거 무거운 주제이다...
얘기는 거침없이 자유당 시절로 갔다
천안역 건너편 제법 큰 빌딩주가 었었는데
정치 바람이 들어서 돌아댕기다가 다 거덜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빌딩주가 자기 장인이고
그 넷째 딸이 최근 세상 떠난 자기 부인이라고...
이제사 본격적으로 자신의 얘기가 시작된다
너무 왜소해 입대 신체검사에 두 번 떨어졌던 얘기
제대 후 지인의 덕에 미군 부대에 취직한 얘기
그 후 열심히 살았고 밥숟갈이나 먹고 산다는 얘기
듣던 나는 끼어들 틈도 없는데
급기야 차내 안내 멘트가 나온다
‘다음 이 열차 정차역은 조치원, 조치원...’
그 어른과는 통성명도 못한 채 그렇게 작별했다
그 앉았던 빈좌석을 보며 어디에 홀린 것 같다
그가 왜 왔다 갔지?
아,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은
남기고 싶은
대하소설 같은 장엄한 인생 스토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