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그리고 목양/건강한 교인이 알아야 할 200가지

“첫 열매는 제사장께 드려야지유-”

johnleejw 2010. 6. 11. 20:02

목사, 과연 제사장인가?(1)

“첫 열매는 제사장께 드려야지유-”

 

농촌에서 보기 드문 열심을 가지고 목회하는 한 동역자의 이야기이다. 교회 옆집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는 주일 낮과 밤, 수요예배는 물론 1년 365일 하루도 새벽기도회를 거르는 법이 없단다. 특히 그 할머니의 목회자에 대한 잔정은 지성스러웁기 그지없어 고추를 따든지 고구마를 캐든지 언제나 맨 첫 번째의 수확물은 목사님댁에 들고 온다는 것이다.

 

어느 봄날 아직 철도 이른데 첫물이라며 애호박 두 개를 들고 온 할머니에게 젊은 목사는 너무 송구스러워, 하나는 가지고 가셔서 끓여드시라고 했단다. 그때 할머니가 정색을 하고 하시는 말 “첫 열매는 제사장께 드려야지유-” 하더란다.

 

목사는 과연 제사장인가? 맞다. 그렇다면 목사만 제사장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성도가 다 제사장이다!

성경의 이 원리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까지 일반 사람들에게 가리워져 있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의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한다.(계1;5,6) 또 베드로 사도는 모든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밷전2;9) 라고 외치고 있다.

곧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란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만인 제사장설’ 이다. 그렇다면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수 있다는 뜻이겠다.

 

제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목사와 신부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다. 목사가 “당신들은 왜 때로 성모 마리아에게 기원을 합니까?”하고 묻자, 신부는 “우리는 거룩하고 존엄하신 왕 앞에 감히 직접 나아가는 것보다는 자비롭고 온유한 성모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보다는 자비롭고 온유한 성모를 통하여 나아가는 쪽을 택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런데 존엄하신 왕이 내 아버지일 때는 경우가 다르지요!”

 

사실 천주교에서는 신부 자신도 어느 정도 하나님과 신도 사이를 중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개념을 가진 성도들이 우리네 개신교 안에도 상당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기대감으로 목회자를 대할 때 어느 사이엔가 목회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자 즉,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필요를 구하고 그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를 보이는 자가 된다. 목사는 하나님의 보좌로 향하는 직통전화를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두계급이 상존한다고 지적한 한스 킹의 말처럼 우리 한국 교회 안에는 분명히 구분되는 계층적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적어도 목사는 성직자로서 하나님 곁에서 멀지 않은 어디쯤 서있는 신분이고, 우리네 평신도는 저 밑 속세에서 사는 시원찮은 존재라는 비뚤어진 개념이 편만해 있다.

그래서 또 혹자는 말하기를 “한국교회의 평신도는 목회자에 대해 불치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까지 혹평하고 있다. 목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그 깊은 뜻을 알수 있고, 따라서 평신도들은 잡다한 가정사까지 모사를 통해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정말 그럴수 있는 사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