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그리고 목양/건강한 교인이 알아야 할 200가지

목회자는 과연 지도자인가, 종인가?

johnleejw 2010. 6. 29. 09:44

지도자인가, 종인가?

 

그렇다면 목회자는 과연 지도자인가, 종인가?

여기서 우리는 잠시 종인 동시에 지도자의 모델로 모세와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모세는 아마도 종 - 지도자의 구약적 모범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어떻게 당신의 백성들을 다루셨는지를 신적인 차원, 그리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게 된다. 모세의 사역의 여러 면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간섭하셨는지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모세라는 사람을 세워 종 - 지도자로 삼으신 것이다.그러나 모세는 인간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때 크게 실패하기도 하였으나 어떤 때는 동족의 열렬한 추앙을 받으며 승리의 순간을 맞기도 하였다. 그는 승리와 성공, 모두를 한 인간 안에서 받아들였으며, 겸비한 하나님의 종으로 끝까지 처신하였다.

다음에 예수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사역을 고난받는 종의 역할이라는 조명 아래서 해석하셨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면서 사역의 근본적 특성으로 섬심을 강조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모델이요, 모범으로서 제시하셨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눅 22:27)

 

그렇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원리는 동일하다.

사역에서의 위대함은 외적 서열이 아니라 섬김의 정도에 있다. 변화산에 따라갔던 제자들은 산정에서의 영적인 경험을 엉뚱한 야망으로 연결시켰다. 그들은 섬김을 준비하기보다는 부끄럽게도 자신의 명예와 지위라는 환상 속에 살았다. 결국 그들은 그 나라에서 사진들이 누려야 할 특권을 주께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라! 예수께서는한 어린아이를 겸손과 신뢰의 모범으로서 제자들 가운데 앉히셨다. 그리고는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이니라”(마 18~5)고 선언하셨다.

오늘 우리가 하는 사역의 진위를 가리는 리트머스 시험은 분명하다. 진실로 어린아이같이 낮아짐에 그 진가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야망에 찬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수 있느냐?”고 물으셨다.(막 10:38). 그리고 이렇게 경계하셨다. “이방인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2~45)

그리스도 이후, 목사(보통 장로라고 표현됨)는 신약교회에서 확실히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그늘 아래 있는 작은 목자였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너희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봄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1~4)

베드로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맡은 양떼 위에 군림하지 말라고 명한다. 그러한 행위는 그리스도 아래서 작은 목자가 되어 그의 말씀을 가르치고 적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신약 성경에서 장로의 권위는 하나님 말씀으로 규정되어 있다(행 20:27~30). 또 장로의 직무는 그들에게 위임된 진리를 가르치고 지키는 것이었다(담전 6:20; 딤후 2:2; 4:1~2). 사도 바울은 디도서 1장 9절에서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려 함이라” 고 말한다. 진실로 목회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르쳐야 한다는데 목자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신약에 나타난 조직 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권위를 회중가운데 뚜렷히 드러내도록 하는 명령이 두 가지 영역에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중요한 교리적인 문제들이고 다른 하나는 심각한 도덕적인 행동들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을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9~20절에서 교리적인 오류와 그에 대한 징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참조, 고전5:5) 디모데후서 2장 17~18절에 따르면 후메내오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치는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전서 5장에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도덕적인 명령들을 불순종해서 징계를 받는 예가 나온다. 바로 근친 상간의 경우이다(고전 5:1~5). 그리고 도무지 일하지 아니함 (살후 3:6, 10~15), 음행, 탐람, 우상숭배, 후욕, 술취함, 토색 등도 모두 이 경우에 속한다. (고전 5:9~11, 계 2:14, 20)

신약에 나타난 징계의 예는 모두가 교리적인 영역에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도덕적인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데서 비롯된다.

그렇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권징의 요소가 있다. 그러나 징계가 상실되어버린 이 세대, 권징이 사라져버린 교회의 세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회에서 권징을 받은 집사가 버젓이 옆 교회에서 장로로 임직받는 예가 낯설지 않은 현실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정당한 권징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역을 뛰어넘어 징계를 가할 권한이 장로에게 주어진 일이 없다. 성경에는 장로들이 성도들을 위해서 개인적인 결정을 내려주어야 한다는 말씀이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낱낱이 간섭할 권한이 있다는 말씀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장로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본을 보이며 적용하는 것이었다. 장로는 온유하여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섬기고 상담하고 격려하며 타이르고 꾸짖으며 가르치고 예언하는 사람이었다(행 20:28~31; 딤전 4:11~16).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목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말씀 아래 그 권위가 규정된 목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