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를 넘어서
전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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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냉동 인간에 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냉동 보존하는 것입니다. 훗날에 의술이 더 발달 되면 그때 깨어날 수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근일에 이것을 주창한 미국 과학자 로버트 에틴거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냉동인간‘ 이라는 책도 내었고 냉동보존연구소(Cryonics Institute)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회원들을 확보했으며 이 중 400여명은 약 3000만원 씩을 내고 사후 냉동보관 계약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이 연구소의 첫 고객은 사망한 에틴거의 모친이었습니다. & 이번에 에틴거가 사망하면서 자신이 106번째로 냉동되는 고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 실소를 머금게 합니다.
‘냉동보존연구소에는 소생을 갈망하는 이들이 누워 있지만, 주정부는 이 시설을 묘지로 분류하고 있다’. ^-^
이 내용의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았더니 이런 흥미로운 댓글들이 있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 모든 '질병'을 고칠 수도 있겠으나, '사망'은 '질병'이 아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없다’.
또 다른 댓글은 아마 주부가 쓴듯합니다: ‘냉동고를 열어 오래된 식품들은 대체적으로 버리기 마련인 것처럼 열어보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넣지 않을까...’
그러나 정직한 답은 이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통제를 못하면 죽음은 인간의 것은 아닙니다. 비록 죽음을 당하는 당사자는 인간이지만 죽음 자체는 인간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치 아닙니까?
인간이 죽음을 당하긴 하지만 죽음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죽음을 주관하는 진짜 주인이 따로 있든지,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이 다가오는게 죽음이라는 것.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이 땅에 그저 우연히 왔다가 그저 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헛되다는 탄식을 다섯 번이 아니라 오백 번도 더해야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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