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조간...
한 어른의 별세를 보도했다.
개인적으로 단 한번도 뵌적이 없지만
평생 뇌리에 박힌 이름. 송성문.
나 역시 그의 저서인 '성문 종합 영어'를 붙들고 장래를 위해 잠과 싸우던 날들이 있었다.
내 인생에 가장 치열하고 가장 숨막히던 여름이 그렇게 지났다.
책갈피 하나하나에는 내게 낯선 골목이 없었다.
그리고... 그 덕을 봤다.
지금의 나의 영어에 관한 '지식'은 아마도 그때 그로 인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국에서 살기도 했지만 그것은 성문의 덕에 그냥 지낸 세월이고...
이해 했다기 보다는
책을 통째로 그냥 외워야 했다.
야간 근무를 자원하여 밤에도 이 책을 곁에두고 단어 숙어를 외우고
이른 아침 남산 도서관을 향해 허이허이 걸어오르던 날들을 생각한다.
삼가 고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띄운다.
진정 한 사람의 삶의 오늘에는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배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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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성문씨 별세
1967년 정통종합영어로 시작 1000만부 팔린 초베스트셀러… 수학의 정석과 함께 참고서의 양대 전설
22일 별세한 '성문영어'의 저자 송성문씨는 평북 정주(定州)에서 태어났다. 정주중학을 3년 반 만에 마치고 정주고급중학에 1기로 입학해 우등 졸업했다. 이후 2년제 신의주교원대에 들어간 그는 교사로 6·25전쟁을 맞았고, 미군이 신의주에 진입하면서 미군과 인연을 맺었다.
미군 앞에서 중학 영어 교과서를 읽자, 그에게 미군은 "통역이 되겠느냐? 함께 평양으로 가자"고 했다. 잠시 통역장교로 근무하다 1·4후퇴 때 미군이 그를 평양에 두고 가자,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그는 부산에서 화물 선적 감시일을 했으며, 1952년에 다시 국군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국군에 있으면서 영어 검정고시 중등·고등과정에 동시에 합격했으며 동아대학교 야간과정도 이수했다. 대위로 제대한 그는 부산고와 마산고 등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그의 마산고 제자 중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 등이 있다.
영어 교재를 출판하게 된 것은 성문각 출판사 이성우 사장이 1960년대 중반 그를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사장은 당시 집 한 채 살 돈인 200만원을 주며 "1년 안에 제대로 된 참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마침 1965년 문교부가 교사 재교육을 위해 그를 뉴질랜드에 보냈을 때 영어 교육 자료를 잔뜩 가져와 성문 영어 시리즈를 낼 수 있었다.
1967년 3월 처음 '정통종합영어'(훗날 '성문종합영어')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의 영어 참고서는 이후 나온 '성문핵심영어'(1968) '성문기본영어'(1977) 등 '성문영어' 시리즈와 함께 1년에 30만부가 팔릴 정도로 대박을 쳤다. 지금까지 성문 시리즈는 10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책은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의 '수학의 정석'과 함께 고교 참고서의 '양대 전설(傳說)'로 통했다. 그는 생전에 "당시 우리나라엔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며 "잘 편집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송씨는 마산고에서 서울고로 옮겼지만, 학원가의 줄기찬 요청을 받고 서울 종로의 경복학원 강사가 됐다.
그는 "학원 단과반에서 한 번에 1200명을 동시에 강의할 정도로 당시 최고 영어 강사로 통했다"고 본지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2003년 간암 판정을 받으며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란 말을 들었지만 8년 동안 투병해 왔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영미명문선'을 비롯한 영어 참고서 3권을 집필했다. 남달리 수석(壽石)을 좋아해 자신의 호인 '혜전(惠田)'를 따 자신이 모은 수석을 전시하는 '혜전 갤러리'(서울시 강남구 역삼동)를 설립했다.
조선 일간지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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