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그리고 목양/목양 칼럼

그들의 신 출애굽기

johnleejw 2011. 12. 13. 22:25

 

                 신 출애굽기

 

막 출근하자 울린다.

낯선 전화번호다.

모처럼의 뜻밖의 안부...

 

해외에서 인근에 지내며 한 때는 더 없는 이웃으로 지낸 그와 그의 가족들..

안부를 나눈다.

 

‘.. 이미 성전 입당은 다 하셨고 그렇지요?’

아니예요...’

 

그 긴 사연들을 어찌 다 말하리-

그저 간략히 결과들만 던지다.

건축 중단과

매도와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의 이전.

 

‘...네에?... 큰 고생하셨네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산 증인처럼 지내온 충현 교회 건축사를 펼친다.

 

- 당시 교회에는 3000만원 밖에 없었으나

35억 짜리 공사를 계약한 일 (이미 30여년 전의 액수!)...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시작되었을 때-

김창인 담임 목사님의 주창대로 온 교우가 재산의 10일조 운동을 펼친 일...

그리고 힘은 들었지만 끝내 이루어놓은 오늘의 충현의 대 교회당-

 

그러면서 그의 결미는.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지요 어디 그렇게들 하나요?’

 

 

,

시대는 누가 만들었는가.

 

시대가 우리를 정당화 시켜주는 것일까.

웃대들이 순교하며 희생하며 일궈놓은 교회를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세류 따라 허물고

모두가 영적 하향 평준화를 이룬 이 시대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 위안을 받으며 이렇게 사는 것일까.

 

저들은 그만큼 드렸기에 받았고

심었기에 더 많은 간증들을 거둘 수 있었지만

오늘 우리는 심지도 않고 거둘 밭도 없는 삶을 황무지처럼 살아간다.

 

자신의 전세를 사글세로 바꾸고

누구는 집과 전부를 드리고..

그럼에도 그게 자랑이 아니고

더 드릴 것이 없음을 아파했다는 웃대의 간증이 그들의 거룩한 교회를 이루었다면...

 

오늘 우리 중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것을 잘라 팔아드리는 마음이 없다.

부족함 없는 의식주와

불편함 없는 문화생활

유족한 씀씀이...

혹자들은 그 와중에 집을 사고 더 넓혀 자신의 지경을 키워갔다.

   

 

저 성전 건축은

본래 계산에 안 닫는 일이라며

믿음과는 생판 남 같은 무신론적 현실론으로만 토론하고

어차피 안 되는 일로 결론을 내가 짓고

나는 그 일과 별 상관없다고 팔짱을 낀 채

그저 인도자의 과욕이라고 치부해버렸다.

헌금은 또 그런데 쓰는 게 아니라고 합리화도 하며...

 

   (..., 그러나 우리가 아닌 밖의 그 어떤이들은 자신의 집을 드리고 

     자신의 한 채 뿐인 아파트를 담보해 대출해주고

     아이들 하나 하나의 이름으로 축복의 반열에 끼이려

     가슴 아린 헌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 땅위에 사는 사람이

자신과 가족을 챙기고 생활을 누리고.. 그런 것들은 죄가 아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 그런 마음들, 그런 풍토들이

건축 중인 교회 교인들의 전반적인 흐름일 때 -

하나님은 그런 우리가 감당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꿈의 큰 지경을 주실 수는 없었다.

차마 주시지 못했다.

 

,

다만 얼마의 사람들이라도 눈물의 희생이 있었더라면

아니 앞장 선 사람 몇이라도 그랬더라면 -

우리는 하나님께 막판 떼라도 써볼 수 있었다.

 

하나님 당신은 살아계신 겁니까 아님 죽은 것입니까...’

 

그러나

마치 가데스의 회군처럼 홀가분히 돌아온 우리는...

하나님을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우리는 ...

이제 삼삼오오 말한다.

편안하게 지내던 우리가 왜 그 개고생을 했는가.

이것은 과연 누구 때문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내가 드린 그 엄청난(??) 헌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에이... 이제는 살만하다. 우리는 큰 고생을 했어. 이제 좀 쉬는 거야....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를 거쳐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갔지만

안일한 자리를 떠났던 우리는

광야를 거쳐 다시금 어디에 도착한 것일까.

도로 그 땅???

 

이제 돌아온 우리는

여기서의 우리 각자는

'각자의 분복'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이광야 행진 속에서 누군가는

주님만이 아시는 마음 드림과

 기도를 바친 이들이 있었을 것인 바...

 

우리는 생각헤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는 패잔병일까.

아니면 개선군일까.

 

각자 각인에 대한 판단을 하실 하나님 앞에

이제 각자가 다가서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