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저마다의 삶

서두는 당신에게

johnleejw 2012. 10. 19. 19:07

 

 

당신이 먼저입니다.

 

 

십여 년 전 숨 가쁜 삶에서 일탈하여 가족과 함께 영국의 소도시 코벤트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차대전 때 폭격을 받았다는 대성당 폐허 앞에서는 정지된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서 모퉁이를 돌아서 말위에 앉은 여인 동상을 찾았다.

영주의 부인이었던 고다이버의 아름다운 사연이 어린 동상이 11세기로 나를 데려갔다.

느리게 사는 사람들 틈으로 나는... 들어온 것일까?

 

사십 초반에 이를 당시, 나는 누구보다 빨리 가야한다는 스스로 만든 목표를 향해 허덕이며 달려왔다.

낮의 교목사역은 사역이고 저녁으로 주말로 나를 요구하는 현장은 어디든 달려갔다. 그러다가... 탈진한 채 병실에 던져져서야 인생에는 쉼표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초기 정착의 날들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낯선 시내에서 스치는 온통 키 큰 백인들은 나를 초라한 이방인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센터를 들어서는데 앞서 문을 당겨 열은 이가 뭐라고 하며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날 그런 일을 두 번이나 더 겪으면서 이 영어의 문외한에게도 그것이 ‘After you'라는 들림이 가능했다.

이 자그마한 동양인에게 양보해주는 그들이 아! 얼마나 정다이 느껴지던지...

 

영국은 우리와 반대 방향인 좌측통행 운전을 한다.

3개월간은 아슬아슬한 적응기간이 되었다. 그러나 도로에서 우물쭈물하는 헷갈림을 다른 운전자들이 참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틈에서의 운전이 즐거움이 되었다. 주행 중 순간적으로 상향등으로 번쩍해주는 차들을 많이 보는데 이는 당신 먼저라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호의를 입은 상대편은 주저 없이 오른손 엄지를 쳐들어 보여 감사를 표시하는... ! 이들은 양보를 하기위해 운전을 하는구나.

 

무한 경쟁의 전쟁터인 이 좁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모두가 급하다. 그래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점점 인색해지고 더 각박해진다. 이래서 우리는 모두가 상처받은 짐승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는 것이다. 스스로 서두르지 말자고 달래야 한다.

따지고 보면 무엇이 그리 급한가? 파란 신호등을 놓쳐도 기다렸다 건너면 된다. 막차만 아니라면 그냥 보내도 좋다. 운전 끼어드는 차는 아, 바쁜가보다 하면 된다. 지하철에서는 앞서 자리를 챙기는 사람보다 다리가 더 건강함을 감사하자. 말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는 들어주는 넉넉한 사람이 되자.

 

우리의 서둚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공을 위해서는 열심히 뛰지만 보람을 위해서는 뛰지 않는 오늘은 가벼운 삶이 가득한 인스턴트시대이다.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에의 집착, 턱없는 경쟁심, 끝없는 성취욕, 단세포적인 자만심...목전의 이익만을 찾아다니는 미물의 모습이다. 일등만 한 빡빡한 사람보다는 중간쯤하며 한 번 쯤은 재수도 해 본 사람이 더 인간미가 있을 것 같다. 느리게 살기, 양보하며 살기, 여유 있게 살기를 다짐하자.

좀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살자.

 

너와 내가 함께 산다는 것이 행복의 이유가 되게 하자.

 

                                      다시 챙겨보는 글                                               2007. 5월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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