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성공하여 제법 알려진 사업가가 있다.
그가 한 방송에 출연하여 대담을 하는 것을 들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는 답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언제나 만날 수 있을 때... 나는 성공했다라고 말할수 있겠다’
그의 답이 흥미롭 다. 그리고 은근히 공감이 간다.
우리가 살며 느끼는 것 아닌가.
내가 만나고 싶다고 누구나 함부로 만날 수 없다!
하다못해 구청에 일을 보러 가도 내 맘대로 구청장을 만날 수 없다.
절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굳이 나 같은 사람을 만나 줄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위축시킨다.
하물며 장관이나 대통령을 독대하는 일은 꿈도 꾸기 어렵다.
목회자들도 그렇다.
교회가 중형 교회에서 대형교회로 진입하게 되면 그 목회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전화 연락조차도 쉽지 않다.
내가 한참 신도시에서 교회당 건축을 할 때, 한 선배가 자주 들렀었다.
‘이 목사님, 교회 건축 끝나면 나 같은 사람은 만나기도 힘 들 텐데...자주 봐야지요’
내가 손사래를 쳐도 그는 그 농담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을 만나는 일은 가능이나 할까?
미신의 세계나 일반 종교의 세계에서도 그 일은 상상 밖의 일 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어떤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창조주라고 소개한다.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셔서 지금도 역사를 섭리하신다고 알려준다.
하나님은 너무 크셔서 하늘의 하늘이라도 그를 거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 그럼에도 성경은 이렇게 귀뜸해준다.
"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갈 4:6)
아! 아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들은 왕궁이든 아버지의 침실이든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 아닌가.
복음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격려한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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