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황규화 권사님을 추모하며
당시 나는 마흔도 안 된 목사였다.
신분은 한창 싱그런 청소년들에게 푹 빠진 교목이었고.
그런 내가 어쩌다가
서대문에 있는 한 특별난 교회(?)의 부름을 받게 되 되었다
주말 목회라 할까?
이 교회에는
한 기도원에서 은혜를 받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가슴 뜨거운 사연은 각양이었고
불치의 병에서 고침, 망가진 가정의 복구, 정신 질환의 회복 등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전성기에는
기도의 부흥과 더불어 기도원의 흥성이 함께 했었다
그곳에는 정말 대단한 영력의 기도자들이 있었고
부인할 수 없는 각양 성령의 나타남이 다발했다
(물론 때로는 신비극단에 빠진 사이비들도 있었지만).
산 기도의 아련한 경험을 가진 세대들은
동두천 골짜기의 밀알기도원을 앎직하다
인생 나이 중반기에 남편을 잃은 그녀는
그는 여의도교회의 전신인 대조동 교회에서 신앙을 다졌고
그리고 기도에 정진하며 끝내 기도원을 일구어내었다
민족이 가난에 허덕이던 바로 그 시기에 그는
이 조국에 교회가 흥성하기를 꿈꿨고
줄잡아 약 150여명의 신학생들을 사비로 도왔다
단아함과 단호함...
흐트러짐 없던 외모와 사리분별의 분명함
내가 그를 그려내고 싶은 두 언어이다
뒤에 앉아 조용히 예배에 함께하던 그는
늘 넉넉한 어머니의 미소로 목사를 세워주곤 하였다
하나님의 당신 딸에 대한 선대하심을 보는 듯
단풍이 곱게 있고 가을볕이 이토록 화사한 오늘
우리는 그의 육신을 오래 전 떠난 어른 곁에 합장하였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기도의 동산에
아, 영광의 날까지 안식할 그의 육신을 은총으로 여기며
그렇게 남아있는 우리들은 성산을 내려왔다.
빈소 앞에 붙여진 현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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