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가 아플 때
우리의 공동체에 아픈 이가 있을 때
그러나 당사자가 꺼릴 때에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이때 목회자는 세세한 상황을 덮는다
그저 당부하며 광고한다
‘우리 그 지체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호기심이 충만해진다
그게 누군데? 누구야?
두리번거린다
이 관심은 뭘까
그냥 호기심?
혹은 야릇한 안도감?
우리의 관심은 절박성 때문이어야한다
진정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고 픈 심정
지체된 이의 아픔을 끌어안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