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좁은 땅에 살면서도
이렇게 모를 수도 있다!
그가 그렇게 유명한~ 봉사자였다.
십여년전, 아니 그 전부터도 설핏
그분들 부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섬기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사실 그 즈음만 해도
우리나라에 제삼국 노동자가 그리 많지 않고
또 그쪽 사역의 가치가 부각되지 않은 즈음...
그렇다면 그들은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국내에서 벌어질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외 선교.
그 일을 주님의 심장으로 계속 해온 결과...
며칠전 우연스럽게 CTS를 보던 중 그 낯익은 얼굴을 대하게 되었다.
눈을 떼지 않고 그 대담 방송을 보았다.
어쩌면... 우리 창성교회의 지체였던 그들이
그토록 열매 있는 사역을 진행하다니- 이또한 감사가 아닌가.
(장로요 권사로서).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형기를 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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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킴.’
홀리네이션스 선교회 김상숙(55) 권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불린다. 김 권사는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실타래처럼 꼬인 그들 삶의 질곡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는 ‘청지기’역을 자청하고 있다.
그녀의 사랑 실천은 ‘무조건적인 치료’‘무조건적인 숙식 해결’‘무조건적인 취업 알선’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사역에는 매월 1000여만원의 예산이 든다. 18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수술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무료 수술까지 시켜준다. 일터가 필요하다면 일자리도 해결해준다. 그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 고정적인 후원자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기적을 상식처럼 만들어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가구단지에 있는 삼위교회(김영덕 목사)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늘 외국인들로 들끓는다. 태국 중국 몽골 러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서 온 왼국인 노동자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국적별로 성경공부를 하며 한쪽에서는 의사 약사 등 전문 자원봉사자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처음 외국인 노동자 선교 사역을 시작할 때는 취직까지 시켜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전 그저 전에 외국에서 살 때처럼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게다가 폐결핵말기 간농양 급성맹장염 허리디스크 등 치료해줘야 할 사람도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김 권사의 선교 사역은 한 마디로 ‘믿음 선교’(Faith Mission)이다. 한번도 물질이 차고 넘치거나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움직여본 적이 없다. 일면식도 없던 분이 10만원을 보내오거나 어느 때는 이틀동안에 1000만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늘 필요한 만큼만 주어졌기 때문에 갑자기 환자가 생기면 해결할 길이 막막했어요. 하지만 무릎 꿇고 기도하면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지요.”
요즘도 ‘천국은행 회장(하나님)의 딸’‘천국은행의 우수고객’임을 자임하는 김 권사는 틈만 있으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 평신도들이 이끌고 있는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의 예산 중 최소 10%는 나눔의 몫이다. 필리핀 한센병 가족을 위한 교회 설립을 위해 1000만원 이상 후원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김 권사의 삶은 18년전으로 거슬러올라 간다. 주재원 남편(조성호 장로?현 금융연수원 자문교수)을 따라 홍콩에서 생활하면서부터다. “홍콩의 스퀘어 파크를 가득 메운 필리핀 가정부들을 보며 주님이 홍콩에 오시면 이곳을 찾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그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줄 때는 마음문을 열지 않았지만 점차 섬기자 친구가 되고 복음을 전하게 됐죠.”
홍콩의 김 권사 집은 1년중 반 이상이 손님들로 북적였다. 선교사들을 위한 숙소,성경공부?기도모임과 병원선교 등을 위한 장소로 집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말레이시아로 임지를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주민 선교를 제대로 하기 위해 48세의 늦은 나이에 말레이어까지 배웠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집중적인 언어공부를 통해 성경공부 교재까지 번역,출판해냈다. 선교 사역 때문에 말레이시아 이민국의 블랙리스트에까지 올라가 가족 중 유일하게 체류 연장 불가 통보를 받기도 했다.
현재 김 권사는 나날이 늘어나는 동역자들 때문에 큰 힘을 얻고 있다. ‘움직이는 선교기지 병원’으로 불리는 의사모임 ‘힐피플’을 비롯해 인근 지역의 가족사랑의원 항문외과 일산복음병원 안양병원 이대동대문병원 원부부치과 등 ‘하나님은 치료,우리는 봉사’로 여기는 동역자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자원봉사자들이 40명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김 권사는 제1의 사역지로 가정을 꼽고 있다. 화목한 가정이 모든 선교의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00만명 전도할래? 자식 잘 키울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의 대답은 언제나 자식 잘 키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 일하니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아셔서 잘 자라게 해주시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하나님이 돌보시지만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권사는 집에서도 가장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바쁜 사역 중에도 편지 등을 통해 자녀들과 대화를 지속한다. 남편 조 장로도 함께 동역하고 있으며 자녀들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김 권사가 그동안의 사역 경험을 통해 세운 원칙에도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이 배어 있다. ‘먼저 주님께 받기 전에 먼저 내 것을 드린다.’ 펌프에 물을 먼저 붓지 않으면 소리만 날 뿐 물이 뿜어지지 않듯이 먼저 내가 드려야 한다는 것. 또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필요한 것을 말씀드린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복음 전파는 사도행전 28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예요. 우리 모두를 통해 주님을 뵐 때까지 이어나가는 거죠.” 김 권사는 천국 평화시 소망구 행복동 모델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이 땅의 기독인이다.
(함태경기자, 기독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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