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들

목사와 평신도

johnleejw 2009. 8. 7. 06:38

 

이진우 목사 출판기념회
2004년 12월 21일 (화) 12:00:00박민균
이진우 목사 출판기념회/사진

창성교회를 담임하며 청소년교육과 건강한교회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진우 목사(사진)가 목회 에세이집 <목사와 평신도>(동서남북 발행)를 출간했다. 목회 에세이집이란 타이틀은 차분히 목양의 소신을 풀어놓은 부드러움에 기인할 뿐, 그 차분함의 이면 속에는 강한 논조보다 더 뚜렷한 목양의 아픔과 의지가 담겨 있다.
여섯 부분의 큰 주제 가운데 '목회자 세우기'의 한 부분. "우리 목회자가 설교도 잘하고, 성품도 일등이고, 얼굴도 우아하고, 흠마저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건 사치스런 희망사항이다. 그도 사람이다. 연약한 사람이다."
이진우 목사는 일부의 목사로 인해 전체가 매도되는 세태 속에서 "목회자를 좀 편들고자 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들을 내 편으로 알고 섬기고 보듬자고 했습니다 ... 세상 앞에서 우리라도 목회자를 끌어안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목회자를 끌어안는 이유는 무조건 비판을 삼가기 위함이 아니다. 교회를 이루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이 땅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비상구인 교회를 위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이다.(02)887-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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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추수해야 하는 가을입니다.

 

동안도 우리의 성역에 함께 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시대는 바뀌어가고 있고, 우리의 목회적 환경도 ‘옛 같지 않다’는 것이 보편적인 얘기입니다. 특히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권위 부정의 상태가 도를 넘어서고, 이는 정당한 권위마저 부인하는 세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노라니, 소위 ‘교회 개혁’을 논하는 주장들은 한결같이 ‘목사의 횡포를 막자’는 쪽으로 주파수가 맞춰짐으로, 목회자가 가져야하는 진정한 영적인 권위마저 침탈당하는 오늘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목회자의 세습 반대 문제에 앞장을 섰던 한국 기윤실-지금은 그러한 류의 부정적인 운동은 늦게 태생한 교개연에 넘겨준 상태-에서, 한 부분을 맡아야했던 지난 수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교회의 개혁을 목회자에게만 타겟을 돌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이 건강한 의식을 갖고, 특히 목회자에 대한 ‘정당한 존중과 협력’의 자세를 갖도록 함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얼마 전에 졸저 ‘목사와 평신도’(동서남북)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는 말도 있습니다만. 목사 자신이 자신의 마음 깊이에 있는 고민이나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을 교인들에게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목회의 도움을 주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근자에 이 책을 제직 필독서로 나누어 준 교회도 있습니다.

이번에 출판사 관계자와 상의 끝에, 지우들에게 절반 가격(한정부수)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상의를 마쳤습니다. 요즘 다들 생활도 여유로운데 교인 선물로는 하찮은 생필품보다는 읽고 교육이 될 서적이 낫다고 보겠습니다.

 

                                                                                       작은 종 이진우 목사

 

 

 

 

지난해가 저무는 즈음에, 도서출판기념 예배를 드렸다.

‘목사와 평신도’...

왜 굳이 새삼스레 그런 행사를 가졌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목사가 책을 쓴 것이 처음도 아닌데.

총회나 학교에 근무하며 기관목회를 하는 시절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들었었다.

신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청소년 사랑의 일념으로 낸 ‘52주제 성경공부’가 발단이 되어 20판을 찍으며 작은 책 ‘도사님의 칼럼’이 지속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글을 쓰는 목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교회 교육을 위한 책, 크리스챤 가정을 위한 책, 장년 및 청소년용 교재들 그리고 신앙 단상류들이 괜찮은 반응을 받으며 계속 출간되었다. 당시 출판 계통의 사람의 말을 빌면 ‘이목사님은 이미 자신의 고정 독자군을 형성하고 있기에 어느 책을 내도 승산이 있다’고 넌지시 귀뜸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에서인지 대충 따져 봐도 40세 즈음에 이르면서 20여권 이상의 책을 썼다.

그러나 일선 목회 현장을 향해 돌아온 2000년 봄 이후, 마음의 ‘퇴근’이 없는 목회자의 삶을 살면서 사실상의 집필을 멈추었었다. 그저 십여 년 이상 지속해 온 ‘지하철 편지’에 짧은 토막글들을 넣는 정도.

그러던 중, 기윤실의 한 파트를 맡으면서 평소에도 생각해왔지만 ‘우리 시대의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글들을 써왔다. 모일 때 마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비등한 말들과 거기에 당연히 따라붙는 ‘목회자 갱신’의 요구들은 내 자신도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 자조감을 느끼게 하곤 했다.

때로는 ‘이게 아닌데..’하는 씁쓸함을 지울 길이 없었다.

허물 많은 목회자와 더불어 허물많은 교회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풀일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질타하고 비난함으로 고치려는 시도보다는,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격려로 서로를 세워져야하는 것은 아닐까. 교회의 허물만을 이리떼 마냥 사냥하는 안티 기독교의 세력이 형성되는 이 시대에.

더구나 이 땅의 80%에 해당하는 소규모의 교회와 그 목회자들은 오늘날의 대부분 떠도는 ‘비난의 소재’와는 상관이 없는 이들이다.

교인들을 사랑하고 충심으로 목양하려는 목회자, 목회자를 신뢰하고 사랑하며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그래서 주일이면 편안하고 감사하고 새 힘을 공급받고 시작되는 월요일... 좋은 교회란 뭐 복잡하고 대단한데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그런 교회, 그런 목사와 평신도를 꿈꾸며 이 번의 책을 펴냈다.

바래기는, 책을 읽는 민족이 흥하는 이치 마냥, 책을 읽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점과 이런 소박하고 손 안에 들어오는 책을 사랑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2004.12월에

 

 

 

 

 내용 중 한 꼭지

 

...불쌍하잖아요?

"우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목회자, 목회자 불쌍하잖아요?"

듣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애잔해졌다.

간만의 방문자인 L 목사를 수요 강단에 초대했다. 이민 목회 20년째라 했다. 아, 벌써 그가 그리됐는가. 미국 동부의 아담한 마을에서 차분히 목회를 하고 있는 그.

"제가 처음 그 마을에 들어 갈 즈음, 그 즈음에 들어 온 한인들... 다 불쌍했습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이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 지금은 다 잘 삽니다. 대개들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어쩌면, 설교라기보다 가슴 깊이 묻어둔 애환(哀歡)의 한 조각을 보는듯 했다.

목사는 저 천국이나 바라보고 살아야지 무슨 소리인가. 우리 범인(凡人)들이야 세상에서도 재미보고 천국도 보장받고 해야 되지만...

이런 식으로 재단하면, 그의 가슴을 이해할 수가 없으리라.

불현듯 나의 한인 목회의 날들이 스쳐갔다.

주로 이민 정착자가 많은 미국 한인 목회와는 달리, 영국의 경우에는 주로 유학생들이 교인의 주류를 이루었다. 짧게는 2년여, 길게는 4~5년여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들 돌아갔다. 학위를 들고 영광스런 귀국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업 중 어려운 고비들을 만났다.

어떤 이는 빈발하는 가정 문제로 유학 생활 유지 자체가 삐걱거렸다. 그들을 다독이며 세워가는 것은 물론 목회자의 몫이었다. 어떤 이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 논문으로 자포자기에 도달했다. 주일 예배를 통해 회복되고, 격려하기를 반복했다. 어떤 자매는 향수병에 걸려 포기 지경에 이르렀고, 어떤 이는 몸에 지병을 얻어 입원 수술을 했다. 돌봄은 다 교회와 목사의 몫이었다. 그렇게 하여 학업을 마치고들 떠나갔다.

나도 어느 해 봄에 돌아오게 되었다. 유학의 짧지 않은 시간에 비해 내 개인적으로 얻은 소득(?)은 그리 많지 않았다.

L 목사의 표현식으로 보면, "그런데... 목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였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잘 나간다’는 그 때, 그들의 소식을 들었다. 누구는 청와대에 들어가 있고, 누구는 모 부처의 수장이 되었단다. 그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목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때로는 목사도 어떤 이는 땅 사고 집 사고 부자 되고...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허나 적어도 내가 알며 교제하는 숱한 목사들 가운데 그런 이는 없는 것 같다. 즉 그런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숫자적으로나 특성상으로나 희귀종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적어도 목회자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치부에서는 제외된 ‘불쌍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보듬는 마음이 적어도 교인들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이 L 목사의 지론이었다.

오늘 새벽의 묵상의 말씀은, 그 수요일 저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살전 3:6) ...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바울과 교인들과의 아름다운 마음 이어짐이 배어나오는 구절이다. 바울은 연약한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인해 마음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런데 교인들 역시 바울 목회자를 사모하여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이다. 대개의 경우, 믿음의 거리는 목회자와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크고 작은 수많은 교회 내의 갈등에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오늘 새벽에는 생각해야 했다.

 

 

 

내용중 또 한꼭지

 

                       남을 챙기기

 

소그룹 시간은 그것이 구역모임이든 성경 공부 모임이든 그 밀도가 높게 마련이다.

대그룹과 달리 각 개인의 참여 여지가 넓기 때문이다. 이 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눈치없이 말이 많은 사람이다. 제한된 시간을 혼자 차지하는 것 만큼 무례한 일은 없다.

자기만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안의 삶마저 더욱 삭막해진다. 나 혼자 구원받아 나 혼자 천국가는 게 신앙이 아니다. 나를 불러 하나님의 가족에 밀어 넣으신 것은 거기서 해야 할 몫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9남매의 한 가운데서 자라며 형님 누님들의 손에 컸다고 해도 관언이 아니다. 나도 내 밑의 동생들을 돌보며 자랐다.

교회 안의 직분자, 기성 신자는 초신자, 연약한 자들의 형님이 되어야 한다. 자상한 누님이 되어줘야 한다, 그것은 자신 의 신앙 뿐만 아니라 다른 연약한 자를 살피고 수고하고 애쓰는 일이다.

 

누가 약한 자인가? 막 교회에 들어 온 초신자이다. 그들의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라. 구역 내의 가난한 자이다. 알게 모르게 보살펴주라. 성경도 잘 못 읽는 못 배운 자이다. 넌지시 성경을 찾아서 펴주라. 교회 내 궂은 일을 다하는 사찰이다. 가끔씩 손을 잡아주라. 혼자 학비 문제로 고심하는 신학생이다. 작은 도움도 큰 격려가 된다.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다. 그와 식사를 같이하라.

베란다에 화사한 꽃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그 집안 분위기가 밝아진다. 교회 안의 전도회나 어떤 모임에 따스한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 자리가 즐거워진다.

 

데일 카네기의《생각이 사람을 바꾼다》중에는 이런 글이 있다.

‘유쾌한 사람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론 자신의 일을 전부 제쳐놓고 타인의 문제에 전력을 쏟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어주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하시디즘 전통에서 내려온 옛 이야기 하나.

 

 

어느 날 랍비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동이 트는 시간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는가?” 제자 중 한 명이 말

 

했다. “멀리서부터 개와 양을 구별할 수 있을 때가 동이 트는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랍비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다른 제

 

자가 "무화과 나무와 포도덩굴을 구분할 수 있을 때가 아닌지요?”하고 말했다. 랍비는 고개를 저었다. 제자들은 결국 랍비에게 "선

 

생님, 선생님의 답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오.”하고 간청했다. 그러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들

 

여다보고 너희가 그들을 너희의 형제나 자매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빛이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동이 트는 시간이다. 그 때까

 

지는 밤이며, 어두움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한 영적 예민함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라.

 

 

                                                    - 책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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