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들

저술 이야기

johnleejw 2009. 8. 2. 16:56

이야기

 

한 모임에서 신학자 칼바르트에 대해 이렇게 평하는 것을 흥미롭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는 그 많은 책을 씀으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았는가’

물론 세기의신학자라고 일각에서는 평하여지기도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그의 수많은 저서들이 엄청난 페해를 남겼다고 말하여 질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내심 심각해졌었다.

 

나 역시 그런 악(?)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내 평생 동안 내 키 만큼의 책을 쓰리라‘ 언제부터인지 그런 생각에 붙들리기도 했다.

 

사실 오랫동안 머물던 그 자리를 떠나 영국에 건너온 40대 초반. 그때까지 나는 이 나이에 이 만큼 책을 쓴 사람은 없으리라는 어줍잖은 자부심을 놓치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자리에서 내 책을 읽었노라고 나서는 사람을 보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일대가 많았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이다. 마치 안씻은 맨 얼굴을 들킨 것 같은 부담이랄까?

가끔 나는 ‘그 동안 몇권의 책을 쓰셨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을 맺는다. 그러면 상대방은 희한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게 놀람인지 비아냥인지 기분이 상했다는 것인지 어림 잡히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햇다.

그 이유는 사실 내가 쓴 책이 몇 권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세어야할 이유도 모르겠거니와 세기에는 제법 숫자가 많기도 한 것이다.

 

 

 

처음에 책을 펴내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에는 그걸 방바닥에 깔아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것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역시 가장 많은 다작으로 들어선 것은 교목생활 때였다고 회고된다.

그러면 교목은 한량한 직업이로구나라고 대뜸 이해하려고들 든다. 그러나 천만부당한 얘기. 교목은 최소한 중고등학교의 교사, 그 이상으로 만만찮은 자리이다. 새벽을 깨워야 하는 칼같은 출근과 10분이라도 미리 나오면 뒷 머리가 간지러운 퇴근이 월요일 부터 토요일 까지 지속된다.

 

그러면 언제 원고를 정리하고 쓰고 그럴수 있을 까? 방과 후 이다. 그 복작대던 학교가 방과 후 삼십분이면 쥐무덤 같아진다. 선생님들도 앞다투어 빠져나가고 간간히 잔무 처리를 하는 교장이나 교감의 말소리만 복도 끝에 맴돈다.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즐겼는지... 일반 목회자와 다른점이 그것이다. 교목이나 기관 목회자는 퇴근이 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쉴수 있는 시간이 있다. 내가 아는바 지교회 목회자에게는 퇴근이 없다. 집에가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근무중이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교인들의 애경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목에게는 놓임이 있었다.

또 하나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그 금같은 시간들. 기나긴 방학 중의 텅빈 운동장을 내려다 보노라면 저절로 착상이 빗발치곤 했다. 당직 교사 차례가 오는걸 싫어하는 일반 교사들이 왜 내가 그 일을 떠맡으며 즐겨했는지 알 턱이나 있을 까?

그 따가운 여름날 홀로 교정을 지키고 있을 때 휘적휘적 운동장을 가로질러 찾아온 분이 있었다. 한국문서선교회의 김기찬 사장. 땀을 씻으며 교목실로 들어서는 그분 앞에서 거절 한마디 못하고 원고를 넘겨드렸었다.

 

  중략. 

 

 

 

 

 

P.S 2000년 지교회 목회 현장에 들어온 이후로는

          거의 여유를 갖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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