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저마다의 삶

허나 우리의 좌파는 '종북'으로 인해 특이한 집단화

johnleejw 2012. 5. 14. 18:41

요즘 시끄러운 통합진보당의 충돌, 분열상.

과연 찻잔속의 태풍인가 아니면 ...

 

어느 나라나 좌파와 우파는 있는 법.

허나 우리의 좌파는 '종북'으로 인해 특이한 집단화...

 

우파를 적으로 간주하며

대한민국을 통째로 부정하는 세력이 되고 있다. 

 

통혁당·남민전·민혁당 등 북한의 지도와 지원 요청
한국 좌파 이론투쟁서 NL 주사파 승리는 비극… 통진당 당권파 '북한식 투쟁' 경악스러운 민얼굴 드러내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역사학
1970년대 이전에는 북한의 국력이 남한보다 강했다. 그래서 당시 남한의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 중 일부는 북한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추종했다. 이런 종북(從北)운동의 대표적인 예가 통일혁명당이었다. 통혁당(統革黨)은 북한의 직접 지도와 자금 지원을 받으며 대한민국 타도를 추구했다. 그 주도자 중 김종태 등 세 명은 사형당했고, 신영복 등은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복역 중 전향서를 쓰고 석방됐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와서 북한과의 연계를 부정한다. 반체제운동 할 때와 조사받을 때 보여준 그들의 '혁명적 패기'는 어디 갔나? 아니면 전향서가 허위였나? 일본의 적군파와 같은 공산테러운동을 추구했던 남민전(南民戰)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1970년대 결성됐다. 이들은 북한에 도움과 지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들의 비조직적인 행동을 불신했다. 이번 총선에 당선된 이학영(민주통합당) 같은 이들은 혁명자금을 얻기 위해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체포됐다. 한때 북한과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각 사건 관련자들의 솔직한 고백과 명확한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1980년대는 종북운동의 전환점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와 정통성을 결여한 전두환 체제에 대한 분노로 인해 대학가에선 급진주의 담론(談論) 투쟁이 전개됐다. 계급투쟁을 먼저 전개해야 한다는 PD(민중민주주의파)와 민족통일운동을 우선시하는 NL(민족해방파)이 대립했다. 이 투쟁에서 NL이 승리했고, NL 내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가 비(非)주사파를 압도하면서 최종 승리자가 됐다. 이들은 처음에는 북한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생겨났지만, 이후 북한과의 연계가 이뤄졌고, 북의 지원을 받은 민족민주혁명당이 창당됐다. 그러나 '원조' 주사파인 김영환이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고 민혁당(民革黨)을 해체할 때, "강철(김영환의 필명)이 고철 됐다"고 반발하며 민혁당을 재건한 잔당과 그 후예들이 요즘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통합진보당(통진당)의 당권파들이다.

생전의 황장엽 선생은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줄타기하는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이 북한에서 이론화한 주체사상이 남한에서도 유행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주사파들은 그저 북한 방송을 들으며 베낀 내용을 유인물로 뿌렸을 뿐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민족지상주의'라는 민족 담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 청년들에게는 감성적·민족적 접근의 NL이 이론적 접근의 PD보다 더 입맛에 맞았다.

서구의 좌파는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사회민주주의로 향하며 의회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이론투쟁에서 공산계열, 그중에서도 NL, 그것도 가장 저급한 주사파가 승리한 것은 비극이었다. NL이나 PD 모두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진부(陳腐)한 퇴보(退步)일 뿐이다. 그들의 반미(反美)주의는 "미국만 없었어도 공산통일이 가능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종북'은 원래 민노당 내 PD가 당권파인 NL을 맹비난하면서 분당할 때 사용해서 유행한 용어이다. 이렇게 종북 NL파를 비판했던 심상정 등 PD파가 아무런 해명 없이 종북파와 다시 손잡고 통진당을 만든 것은 원칙 없는 야합(野合)이었고, 지금 통진당 사태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안철수 교수의 부친에 따르면 안씨는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한다. 안씨는 훌륭한 벤처기업가이지만 정작 정치와 사상논쟁에 대해선 식견이 전혀 없는 '책상물림'임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아무리 좌파학자들에게 속성과외를 받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런 안이한 사회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요즘 통감할 것이다.

그동안 종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실체를 대중에게 잘 숨겨오며 여러 정당에 침투해 들어갔다. 시인 최영미는 '돼지의 변신'이란 시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감방에서 한 이십년 썩은 후에/그는 여우가 되었다… 감옥을 나온 뒤/그를 사람들이 높이 쳐다보면서/… 냄새 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요즘 통진당 NL 당권파가 보여주는 경악스러운 민얼굴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민주주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들의 진면목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들은 계속 자신들이 흠모하는 북한체제식 투쟁을 계속하시라. 그래야 순진한 사람들이 '돼지를 선비로 오인하는' 불상사가 없지 않겠는가.

        조선일보 201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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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사회당과 한국 좌파. 이용식. 문화일보    2012/05/14 13:49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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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사회당과 한국 左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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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논설실장

17년 만의 재집권에 성공한 프랑스 사회당의 역사는 국내 좌파(左派)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1969년 창당 뒤 12년 만인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당선시킴으로써 공산당을 제치고 좌파 주류(主流)로 확고히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사회당 창당 당시 프랑스 좌파 진영에서 소련 독재정권과의 관계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요즘 통합진보당의 종북(從北) 논란과 흡사하다. 1871년 파리코뮌이 그 연원일 정도로 프랑스 좌파의 뿌리는 깊다. 다양한 세력의 이합집산이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늘 중심에 있었다. 특히 1920년 창당된 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점령 기간 중 레지스탕스의 선두였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1945년 종전 뒤 첫 선거에서 약 25%를 득표해 제1야당이 됐으며, 제4공화국 초대 정부에도 참여했다. 사회당 창당 이전까지 25년 동안 총선에서 항상 2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 독재와 동유럽 공산화가 진행되면서 유럽 좌파 사이에서 종소(從蘇·소련 추종) 노선과 교조주의(dogmatism)에 대한 반성과 대안(代案)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것이 1951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인데, “독재정치는 파시스트와 공산주의 어느 쪽에 의한 것이든 국민의 자유와 세계 평화에 위험하다”며 “정치적 민주주의야말로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천명했다. 폭력·계급혁명을 포기하고, 민주적 선거를 통한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민주사회주의 운동의 출발이다.

그럼에도 프랑스 공산당이 소련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계속 외면하자 양심적·합리적 좌파세력이 이탈해 사회당을 만들었고, 공산당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공산당은 지난달 22일 실시된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에도 크게 뒤져 4위에 머물렀다. 심지어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탄광촌인 에낭 보몽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아 ‘노동자의 대변자’라고 외치며 이 지역에서 1위를 했다. 4·11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구(舊) 민주노동당의 근거지였던 울산·창원에서 새누리당에 전패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현존 한국 좌파정당의 역사는 12년 전인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시작됐다. 프랑스 사회당이 창당 12년 만에 집권한 것과 달리 집권은커녕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지경에 처했다. 통합진보당 내분의 본질은 북한 독재와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는, 교조주의에서 탈피해 내부 민주화부터 이루지 않고는 정상적 정치세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좌파는 반세기 전에 ‘종소’노선을 버렸다. 북한 상황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 상황에 뒤지지 않는다. 6·25 전쟁을 일으키고, 3대 세습까지 강행했다. 이런데도 ‘종북’노선을 청산하지 않는 것은 대중정당 포기를 넘어 반역행위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분란이 올바른 방향으로 정리되기만 한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사회당은 노동자 계층보다는 교사·공무원·지식인 등 중산층의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지지율이 떨어지자 민영화 추진 등 제3의 길을 수용하며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활로가 분명하지만 종북 세력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를 방해하려 할 것이다.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인 민혁당 잔존 세력이 경기동부연합의 주류가 되고, 민주노동당에 이어 통합진보당을 장악하고, 야권연대로 민주통합당을 흔들고, 공동정권에 들어가 종북 정책을 펴는 ‘왝더독(wag the dog)’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진보·좌파라면 종북 문제를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분당(分黨)이 될 수도 있지만 감수할 만한 진통이다. 수사를 자청하는 고육책(苦肉策)도 검토할 만하다. 종북세력과 ‘투표부정’ 당선자들을 제19대 국회 임기 시작 전에 퇴출시키는 것이 출발점이다.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은 자멸의 길이다. 프랑스 사회당이 ‘종소’ 교조주의에서 탈피, 독립했듯이 한국 좌파도 신좌파(New Left)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만이 진보를 살리고, 또 언젠가 집권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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