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기
국내 한 일간지 기자가 독일의 지하철 안에서 본 일들에 관하여 쓴 칼럼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인즉 너댓살 먹은 사내아이가 자기 어머니와 여행하고 있었다. 좌석에서 심한 장난을 하다가 꾸중을 듣자?즉시?단정한 자세로 내릴 때까지 앉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뭐 그것이 대단한 얘기거리겠냐 마는 우리네 현실은 어떠한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나는 종종 막무가내인 아이들을 보곤 한다. 제 자식 안 귀여운 부모 없다. 그러나 마땅히 제재해야 할 행위들을 대견한 듯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꼴불견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어떤 예절이나 질서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의 예절을 알고 있는가?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우선 승하차시에는 차례로 타고 내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명동 지하철역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른들 사이로 끼여드는 아이들을 자주 본다. 차안에서는 노약자나 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한다. 그러나 어른에게 자리를 내드리는 청소년들은 결코 흔치 않다. 차안에서 친구들과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의 소란스러운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소리내어 껌을 씹거나 씹던 껌을 바닥에 뱉는 행위 등은 금물이다. 비오는 날에는 우산이 남의 옷에 닿지 않도록 꼿꼿이 세워 들어야 한다. 붐비는 차 안 일수록 밀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부득이 하면 죄송합니다?등의 양해를 구하면서 이동해야 한다. 아무 말 없이 남의 등을 밀거나 좌우를 밀치며 나가는 일은 몰상식한 일이다.
가족이나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차에 오를 때에는 손윗사람이나 여성을 먼저 태우고, 내릴 때에는 반대로 손아랫 사람이나 남성이 먼저 내리는 것이 예의이다. 이는 약자를 보호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은 사실 생활인의 기본 덕목이다. 기본이란 또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뜻도 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몫이다.
내가 해외에 머물면서 새삼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학교 앞을 편안히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쏟아져 오는 길을 어느 노인이 맘놓고 걸어갈 수 있을까? 행여 자기 어깨라도 스칠까 비켜주며, 설핏하면 ‘Excuse me'가 입에 붙어 있는 그곳 아이들을 보며 이게 선진국이라는 것일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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