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그리고 목양/건강한 교인이 알아야 할 200가지

자기 영혼의 실체를 직시함

johnleejw 2009. 12. 4. 06:09

자기 영혼의 실체를 직시함

 

언제부터인가 기도가 지루하고 별 기대감이 없어졌는가? 시간이 지루해졌는가?

자신의 영혼에 대한 각성의 미천함 때문이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 ’ ‘나는 기도할 제목이 없다’.

남을 위한 중보기도로 우리의 기도 폭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우리의 기도가 옆으로 돌아다니는 기도로만 가득하면 안 된다.

 

남은 구원하되 자기는 버림받을 것을 우려했던 바울의 그 깊은 그 심정을 상기하라.

정직하게 드려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내 영적인 상태가 더욱 긴박하다. 이것을 뼈저리게 절감하기 전까지는 아직 우리는 온전한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바울은 사도요 능력있는 전도자였다. 주님의 부름 받은 이후의 생은 거의 일생을 전도자요 선교사로 바삐 뛰었다. 그럼 그는 일생을 그렇게 다른 이의 영혼 구원에만 몰두했는가?? 이방인의 구원만 그의 목표였는가?

모르는 소리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로 끊임없이 주 앞에서 고민한 한 사람의 구도자였다.

그의 자신의 내적인 고뇌를 들어보라.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서를 기억하라. 그는 자신을 죄인의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한다. 그냥 빈 소리가 아니다. 그는 점점 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처절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이해되는가?

 

아들 손자 며느리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때로 남의 좋은 신발로 바꿔 신고 간다. 또한 간간이 기도가 끝난 후 돌아가며 남의 밭에서 호박을 따서 들고 간다. ‘우리 손주들 국 끓여주면 좋아하겠네’.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렇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자기의 영적인 황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신앙의 미천함을 통렬하게 보는 것이다. 단 한조각의 자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도에는 거기에는 눈물이 있다. 눈물이 없는 기도자의 특징은 무엇인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변화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회개한다, 고백한다 할 때 너무 표면적이다.

오늘 ‘##집사에게 성질냈습니다... 거짓말을 했네요.... ’. 이런 내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 쪽으로 무게중심의 이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사랑해왔다. 이보다 더 심각한 죄는 없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하고 다른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살고 있다. 사람은 마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자랑하고 앞세우게 되어 있다. 냉정히 생각하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진정 하나님을 자랑하는가? 여기서부터 우리의 아픈 기도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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