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그네길 세월/나의 학교, 교회&사회

총신대학교

johnleejw 2009. 8. 7. 14:54

총신대학교  종교교육학과

 

 

 

 

군입대 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내내 나를 괴롭히던 것... '이 길은 내 길이 아닐 것이다'는 갈등.

하나님은 군생활 동안 신실한 청년들을 만나게 하시다. 김성윤, 황삼익, 이차영...이들이 모두 총신과 관련된 사람들!!

 

전역 후, 수개월의 철도 복직 근무후 사직서를 내다.

그렇게 늦깎이 대학생으로 다시 서다. 생계나 다른 대안은 아직 없었다. 

 

                                                                              예비군 학생의  유일한 낙이던?? 기독교 문학회... 문우들...

                                                                                      캠퍼스 내의 문예전...

                                                 문우들과 함께한 강변 수련회... 박기석, 윤여성, 유영열, 김필곤 목사 & 김현진 등이 보인다.

 

 

                                                              *지금의 홈피   창조문학회 http://clcc.or.kr/menu10_4/board_main.asp

      

  

   졸업. 1982. 1월..

 

와주신 부모님, 가족.

그리고 당시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던 신반포 교회 식구들이 보인다..

 

     당시 같이 교육부서를 섬기던...

      김흥태 장로, 주도홍 교수, 김우일 목사 등이 보인다

 

 

 아래는 그 당시 즈음을 보며

신학교 난립의 한국 현실을 고심하며  쓴 글이다.

 

 

 

2008-11-24

                  총신대의 채플

퍽 오래전이었다.
목사 안수를 갓 받은 따끈따근한 애송이 목사로서 나는 모교의 채플에 초대되었었다. 이는 내가 나온 종교교육과의 헌신 예배 시간이었다. 좌석에 만장한 교수님들의 면면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자못 흥분했었다. 

며칠 전, 채플 역시 같은 명목의 시간이었다. 정확히 21년 만이었다. 
단지 변한 것은 당시의 종교교육학과가 기독교교육학과로 명칭이 바뀐 것, 그리고 장소가 신관 강당이었던 것이 새로이 지은 웅장한 종합관 강당이라는 것. 
예배 시작 10분 전 쯤 안내를 받아 단상에 올라갔다. 
둘러보니 각 출입구마다 출석 확인담당자가 서있었다. ‘문지기’를 통해 채플 참석 확인을 받으며 들어오는 저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나아오는 것일까.... 
은혜의 자리라 할지라도 강요된 심정은 그리 따스하지 못할 성 싶다. 

‘몸소’ 찬양 한두곡을 인도하고 통성 기도로 예배의 불을 지피는 교목 목사님의 열정이 돋보였다. 

우리가 여기서 신학을 하고 현장을 바라 볼 때,  ‘그래 우리 선배들은 목회 환경이 좋았었는데...’하고 탄식을 했었다. 이제 시간은 강산이 두어번 바뀔 만큼 더 흘렀고 환경은 더욱 참혹해졌다. 저들은 어떤 심정일지.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에 맘을 다 두고 있고 영적 정신적 영역에는 낯이 설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 심화되어간다. 또한 시대적 분위기는 더욱 반 교회적인 분위기로 들어가고 있다. 
무슨 소망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한 가지 소망이 있음은 그래도 하나님은 그의 오염된 피조세계에 대한 애정을 거두어들이지 않았으며 그 거룩한 수단으로서의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이 허물 많은 교회는 그럼에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그래서... 그 날의 채플도 은혜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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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총신대보'에 실린 '전태일 열사 찬양'에 관한 글에대한

선배로서의 고언으로 역시 총신대보 다음 호에 게재됨   2003.

 

 

시대를 향한 우리들의 잣대

 

전태일은 1948년에 태어나 1970년에 죽기까지 22년의 생을 불꽃같이 살다가 갔다.

그는 청계로 피복거리의 재단사였다. 21세에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했고 22세에는 "삼동 친목회"라는 투쟁 조직을 다시 만든다. 그러던 그는 분신이라는 방법을 택하고 평화 시장 거리에서 산화(散華)한다.

그는 이 나라의 노동 운동의 한 획을 긋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처절한 노동자였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삶을 산 것은 과연 그 들 뿐이었을까.

그가 산화한 그 즈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자취방은 연탄 냄새가 배어있었고 밤에는 빈대들과 전쟁을 치러내야 했다.

박봉(薄俸)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철야를 밥먹듯하던 공단의 여공들, 하늘만 바라보던 빈농(貧農)들 할 것 없이 가난의 애잔함은 이 나라 구석마다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과 땀을 먹고 우리의 나라는 일어서고 있었다. 가난의 대물림만은 피하자고 모두들 허리띠를 동여매고 있었다.

 

우리는 이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는 세상-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그것은 낭만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사는 해 아래에는 "가난한 자와 부자가 공존"하여 왔다.

그러나 투쟁과 분노로 세상을 낙원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민중 운동, 혹은 투쟁가들 말이다.

 

영국에서 유학생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그 지역의 학교가 노동 운동으로 명성을 가진 대학이라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다. 유학생 중 상당수가 전교조, 노동 운동 등에 몸담던 이들이었다.

거기서 나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전태일의 여동생인 전순옥을 만났다. 그녀는 우리 교회가 마련한 ‘여름 수련회’에 참여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지는 않았다.

어느 저녁에는 대학의 강의실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방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그날 저녁, 사람들은 ‘노동자의 메시야’로 인해 한껏 고무되었다. 가슴 한편이 허전했던 나는 거기서 이방인었던가.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이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절대시함으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투쟁적 비민주적 자세를 갖기 쉽다는 점이다. 그들 중 누구는 ‘대외민주, 대내 복종’이 자기들 모토라고도 했다.

얼마 후, 한인교회는 그 지역 대다수의 한인이 예배에 나올 만큼 성장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끝내 교회 밖의 제3 그룹으로 남았다.

그들의 ‘신념’은 또 하나의 종교였다.

 

오늘의 한국은 변화의 정점에 있다.

재야가 주류가 되었고, 주류는 주변인이 되었다.

이 시대에 누가 감히 전태일에 대해 딴죽을 걸 수 있는가.

 ‘노동자’는 신성한 단어가 되었다. 모든 기존의 것들을 타개하자는 구호가 드높다. 인정받던 권위들이 끌어내려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 권위’의 존재로 시작된다. 그 진리는 불변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믿는 신앙인은 시대의 흐름에 요동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세상이 하니까 ‘교회도’ 과거를 청산하자고 나선다. 부활절 연합예배장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린다.

아! 교회가 이처럼 초라해졌는가. 민족 통일이 지상 과제라고들 한다. 통일은 필요하나 그것이 지상과제일 수는 없다. 우리는 민족보다 더 큰 열방을 보아야 한다.

정직하게 말해보자. 돈을 더 받아내자는 내용과 상관없는 노동 운동이 어디 있는가.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단어는 ‘인권’일 것이다. 사람대우 받으며 ‘여기’서 한 번 살아보자는 것 아닌가. 이게 최고의 가치일수 있는가.

아! 우리 모두가 세상에 최면(催眠)되어 있다. 현세의 가치가 영원을 압도하고 변하는 것들이 불변의 것을 도말하고 말았다. 그것들은 지나간다. 풍조, 사상, 이념은 스치고 가는 계절풍 같은 것이다.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시대의 자식이 아닌 ‘진리의 자식’으로 불변의 것을 붙들고 사는 당신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이진우 목사 (종교과 82년 졸업, 기윤실집행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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