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허리 쯤에 위치한
Capernwray Bible school
28개국의 120명 학생과 공동생활로
98년도에 1년여 지내던...
쉼과 성경 사랑이 더해가던 쉼과 넉넉한 시간!

수업 중 쉬는 시간...
왼쪽은 오스트리아의 중학교 교사인 자매,
오른 쪽은 자기 아내와 함께 위클립 선교회 사역자인 형제... 이 형제는 인근 읍내로 나를 불러내어 특별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는 젊음들이 넘쳐 흐르고... 왁자지껄...
맨끝에 서있는 얼굴이 반쯤가려진 녀석이 로오렌스. 기숙사 방 친구.
귀국 후 오래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이 학교에서, 안식년을왔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쉼을 누림
박종혁 목사, 박영덕 목사 가족... (아니 공동묘지 앞에서였던가??)

인근 바닷가... 좀 썰렁했었다....

방문한 아내와 함께
시원하게 요한 계시록을 강의하신 교수님
칼럼/ 나와 유학
영국에 건너오니 뜻밖에도 너무도 많은 선후배 동문들이 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선배는 거의 없고 주로 후배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학교를 마치고 준비하여 유학 나오면 다들 그저 삼십대 정도. 싱싱들 하다.
그래서 많은 낯익은 후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그 이진우 목사님을 이렇게 뵙다니요’ 하며 나의 무슨 무슨 책을 줄줄 꾀는 이도 있었다. 황송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더욱 대단하다.
나는 그 나이에 유학,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일찌기 영어와는 작별을 했다. 대학이나 신학교 재학 중에도, 끝까지 읽어낸 원서는 하나도 없는가 싶다.
그런데 영어의 본고장이라는데 이렇게 내동댕이쳐질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럴 줄 알았더면 그 흔한 Vocabulary 책이라도 좀 끼고 다닐 것을- .
내가 처음 도착한 잉글랜드 북부의 도시에는 S대학 내에 성서학과-그들은 이미 신학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고 있었다-가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하루 청강을 했다.
그 날로 마음을 접었다. 우선은 잘 들리지가 않았다.
교수진 가운데 크리스챤이 거의 없다는 말은 아예 입맛을 잃게 했다.
(...허지만 내게도 돈이 좀 되고 건강이 되고 또 영어가 재미 있었으면 그런 유의 과정을 시도해봤을지도(?) 모른다).
거반의 유럽 신학교라는 데가 그런 신학적 분위기라고 거기서 공부하고 있던 동료가 귀뜸 했다.
물론 자신의 신앙을 꼿꼿이 지키며 뚜렷한 주관 하에 공부하고 논문 쓰면 어느 학교 어디에 갔다 놔도 별 문제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게 잘 용납이 안 되었다. 까마귀와 함께 놀면 까마귀 짓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목회가 좋다.
나는 목회자로서는 배울 만큼 배웠다고 자부한다(이 천박한 표현을 용서하시라).
또 학문 학위는 영성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더욱이 목회와는 거의 무관하다고 믿는다.
나의 사당동 신학교 시절에는 석사 과정 외에 연구 과정과 연수 과정이란게 있었다.
졸업을 하고 십여년이 넘게 흘렀다.
보라. 목회는 내가 서랍에 챙겨둔 석사 학위증이 해내는게 아니었다.
재미있게도 연구 연수 과정의 출신들 중에 더 멋들어지게 목회 하는 이들이 많았다. 수천명 교인의 교회를 왕성하게 목회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들 중에‘신학교를 운영하는’ 이도 있다.
그들 중 혹자는 일찌기 해외에 나가서 선교지에서 멋들어지게 사역도 한다.
참 재미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후임자를 찾고 있다.
제법 큰 교회는 Ph.D 학위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제출되는 이력서에는 학력이 확실하게 쓰여져야 한다. 이는 넌센스다.
30년 전 만해도 차고 넘치던 스코틀란드의 교회.
스코틀란드를 여행하던 초여름 저녁, 그 동네의 스코티쉬 청년과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 지역 교회가 저토록 썰렁해진 것은 성직자들의 고학력 추구와 시기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이게 무의미한 관찰일까?
그것이 돈이든 명예이든 학위이든 기댈 것이 있으면 인간은 느슨해지는 법.
목회자가 기댈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의 소지일 수 있다.
혹간 날보고도 강단보다는 교단 쪽 아니냐고 부추기는 이들이 있다.
정말 어떤 이들은 교수하며 교단에 서야 한다 . 그러나 나는 펄쩍 뛴다.
나는 목회하려고 신학 했고 여기까지 와 있노라고.
목회야 말로 가장 귀하고 가장 고난도의 사역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목회지로 돌아간다.
이만큼에서 영국 생활을 접고....
2000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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