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논현동에 있는
영동 중앙교회
고등부 지도의 행복한 날들
황선명장로 김영식 최종현 이용성 목사등.... 조금은 구식의 교회당
교역자 일동의 특송, 백상근 담임목사님과 일동
군부대 위로 방문예배 후
대학부와 상주봉강교회 여름 봉사 활동중, 정종현 이차영 목사도 보임
연말 졸업예배 때 교사, 장로 일동이 학생들과... "축복한다. 사랑한다. 얘들아." 정종현 목사와
이들과 지낸 흔적이 책으로 되기도 했다.
아래 글은
기독 신문사 간의 '교사 그 위대한 힘을 깨우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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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않기
(행 15: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위대한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은 2차 선교 여행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바나바는 팀의 일원으로 청년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반대했습니다. 일차 여행 때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간 녀석을 더 이상 신용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기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행 15:37-40).
물론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단지 혈연관계로 마가를 챙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의 실수로 배제되어 버려질 한 청년을 사랑으로 감싸고 다시 세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이때 마가를 챙겨 결국에는 베드로의 제자 마가로 키워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놀랍게도 마가의 이름을 배척했던 그 바울을 통하여 다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 사도가 생애 말년 쯤 로마 옥중에 있을 때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옥중서신의 마지막 인사말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여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도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4:10)
아! 마가는 바울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가는 회복되었고 성장하여 다시! 바울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가가 바울로 부터 배척을 받은 지 12년 후의 일입니다. 마가의 신실함을 이제는 바울이 증명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마가를 누가 그렇게 일으켜 세운 것입니까? 바나바!
초라하게 무대 밖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던 젊은이 마가를 끝까지 붙들고 대사도의 옥중 동료로까지 키운 것은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또 그로부터 4년 후 바울이 생애 마지막 유언 서신인 디모데 후서를 쓸 때, 그 말미에 마가에 대한 그리움이 젖어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 하니라 (딤후 4:9-11)’.
당시 마가는 소아시아 교회를 돌보며 순회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옥중에서 바울은 마가를 보고 싶었고 또 필요로 했습니다.
아마 바울도 속으로 이러지 않았을 까요? ‘바나바님이 역시 옳았어. 나는 마가를 버렸는데 그는 끝까지 용서하고 돌보았어. ...’ 그래서 굳건히 서있는 마가를 볼 때마다 바울은 바나바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퀴즈입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마가복음!
주후 67년 경 네로 황제의 박해가 극에 달하고 베드로와 바울 같은 지도자들이 순교하게 되는 상황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순교의 위기에 직면한 초기 성도들에게 예수의 제자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복음서였습니다. 마가복음서는 누가 기록했습니까? 바로 마가가 남긴--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으면서-것입니다. 마가는 누가 일으켜 세웠습니까? 바나바.
당신은 교사로서 오늘 다시 손목을 잡아 일으켜야 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한 두 번의 실수로, 혹은 결점이 있기에 포기해버리지는 않습니까?
요즘은 교사 선생님들이 너무 쉽게 아이들을 포기합니다.
‘저 이사 가요.... 또는, “ 엄마가 교회가지 말래요...’하면 ‘그래?’.
그리고는 출석부에서 이름을 삭제해버립니다. 정말 그 아이가 이사를 가는지.. 그 부모의 반대가 어느 정도인지 그 이후를 생각도 안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의 귀중함을 아는 교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지요.
나는 우리 시대의 교회가 너무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일 학교에 전반적으로 그런 안일함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전도사님들이, 교사들이 그냥 앉아서 찾아오는 애들만 데리고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찾아 나서는 수고가 없어요.
사도행전의 초두에 보면
‘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 1:1,2)‘
로 되어 있습니다. 수신자는 한 사람 데오빌로입니다. 누가는 한 사람 데오빌로를 위하여 기나긴 사도행전을 서신 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내가 먼저 쓴 글’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미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24장, 사도행전 28장 도합 장장 52장의 편지글을 한 사람을 위해 기록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처럼 모나미 볼펜과 백지가 있었습니까? 그게 가죽이나 파피루스 두루마리이었을 것입니다. 거기 일일이 한 자씩 썼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한 수고, 희생은 이런 것입니다.
만일 주일학교의 교역자와 교사들이 토요일 오후에라도 전도지를 들고 하나를 찾기 위해 골목으로 나간다면... 그리고 그 한 영혼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발견한다면.. 결코 쉬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교사는 전도자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방법들도 개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의 무책임한 마음은 복음 사역을 기피합니다.
‘나는 싫어’ ‘부끄럽거든’‘본래 전도는 나의 은사가 아닌 것 같아’.
이 말씀을 전하는 나 자신도 전도자로서의 은사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원래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전도는 은사 이전에 주님의 지상 명령이고 이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과 핑계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벌써 오래 전, 교육 전도사로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거리로 나갔습니다. 골목을 다 뒤지고 거리의 다방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앞장서 다녔더니 뜻 있는 교사들이 따라붙고 아이들이 다 전도자가 되더군요. 하나님은 그때 우리 교회에 장년부 보다도 더 많은 학생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10개라는 수고를 드렸음에도 주님은 20이라는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가 한번은 대단히 난해한 바이올린 연주곡을 작곡했습니다. 곡을 넘겨받은 연주자는 몇 주간 연습한 끝에 스트라빈스키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연주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곡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연주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때 연주자에게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해합니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어떻게든 연주해보려고 애쓸 때 나오는 그 소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미리 포기하는 것은 불성실입니다. 최선을 다한 뒤의 결과는 그것이 무엇이든 최선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사는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본 어머니는 아이를 정말 사랑합니다. 그 산고를 알거든요. 그 아이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낀 것입니다.
전도는 포기하지 않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의 가치를 아는 사역자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