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저마다의 삶

충청도와 세종시 사태

johnleejw 2009. 11. 18. 15:12

충청도와 세종시 사태

 

종종 고향을 찾아 서산대교를 건너노라면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여기는 忠節의 고장 충청도에유~’

 

예부터 내 공향 충청도가 충절의 고장이라고 불렸음을 나는 기뻐한다.

서둘지도 않고 그 용기를 뽐내지도 않는 사람들... 그저 조용한 듯한 그들의 땅이, 국가적 위기나 재난에 처했을 때에는 가장 강렬하게 의지를 작동했다.

 

일제에 맨손으로 맞선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중 17명이 충청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물론, 임진왜란 때의 700의총이 거기에 있다. 그 밖에 길재 성삼문 송시열 박문수 최익현 이상재 김좌진 유관순 윤봉길 한용운 같은 의사. 열사들이 모두 충청의 사람들이었다.

 

자랑스럽게도 그들은 이 나라 역사 속에서 입신출세보다 국난타개에, 사리사욕보다 대의명분에, 지배욕이나 실리보다 봉사심이나 공익에, 훼절의 갈대보다 충절의 송죽(松竹)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다.

 

 

                                                                                                                                        충남의 한 들녘

 

해방 이후 50여년의 정치적 변환기를 거치며 서울에 수도가 있는 이 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영남과 호남으로 마음들이 갈리며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파열음을 빚어내왔다. 이 좁은 땅에서 웬 영호남이냐 탄식하는 이들도 동향끼리 모이면 ‘우리가 남이가’하며 유난히 챙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 틈새에서 충청은 그냥 제 자리에 있었다. 무슨 경제적 발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흔한 대통령 하나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잡기가 이 나라의 역사 발전에도 한몫을 한 것이 아닐까.

 

그 충청도가 지금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이른바 ‘세종시’ 사태... 한 정권에 의해 서둘러 결정된 환도(還都). 어쩌다 그 후보지가 되어버린 충청도는 이제 또 다른 정권에 의해 부인되는 사태에 서 있다.

그 일을 그대로 진행하는 쪽이나 또 수정하는 쪽이나 양쪽 다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충청인들에게는 자신의 생존과 실리에 관련이 있다.

이 시점에서 충청인들은 바로 그 정신, 충절의 본향의 사람들로서 서야 한다. 오늘 보다는 내일, 우리 보다는 국가를 생각하는 반듯한 의지를 발동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 공명정대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천명할 수 있다면, 그 주장은 참으로 당당한 것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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